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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HERE NOW

지금 여기에 있으라

Ram Dass · 람 다스Lama Foundation · 1971완전 해설판

하버드 심리학 교수가 인도의 스승을 만나 다시 태어나기까지 — 반문화 시대의 가장 유명한 영적 고전을, 원문과 번역과 해설로 한 장씩 짚어 읽는다.

OVERVIEW

한 권의 지도

이 책은 무엇이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Be Here Now»(1971)는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였던 리처드 앨퍼트(Richard Alpert)가 인도에서 바바 람 다스(Baba Ram Dass)라는 이름을 얻고 돌아온 뒤, 자신의 변모 과정과 스승에게 배운 가르침을 엮어 낸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한 사람의 저작이라기보다 공동 창작물에 가깝다. 뉴멕시코의 영성 공동체 라마 재단(Lama Foundation) 구성원들이 람 다스의 강연 녹취를 함께 편집하고, 손으로 그린 그림과 캘리그래피로 지면을 채워 완성했다. 처음에는 소책자 묶음 형태로 배포되었고, 1971년에 지금과 같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출간 이후 이 책은 크라운 출판사(Crown Publishers)를 통해 널리 유통되었고, 1977년 여름 라마 재단은 저작권과 수익의 절반을 람 다스가 세운 하누만 재단(Hanuman Foundation)에 넘겨 책이 만들어 낸 에너지가 교도소 아쉬람 프로젝트, 임종 프로젝트 같은 봉사 활동으로 이어지게 했다. 누적 판매는 200만 부를 훌쩍 넘겼고, 이 책은 1970년대 반문화(counterculture)를 대표하는 고전이 되었다.

이 책의 역사적 의미는 뚜렷하다. 사이키델릭 실험의 한계에 부딪힌 한 세대에게, 약물이 잠깐 보여 준 의식의 지평을 요가·명상·헌신 같은 오랜 수행 전통으로 지속할 수 있다는 다리를 놓아 준 것이다. 인도의 구루(guru), 만트라(mantra), 사다나(sadhana) 같은 개념이 서구 대중문화의 어휘로 자리 잡는 데 이 책이 한 역할은 매우 크며, 오늘날 명상과 마음챙김 문화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김없이 이 책과 만나게 된다.

책 전체를 꿰뚫는 문장은 "Remember, Be Here Now" — "기억하라, 지금 여기에 있으라"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계산은 마음이 지어낸 것일 뿐이며, 실제로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이다. 앞에 붙은 "Remember"는 이 단순한 진실을 우리가 끊임없이 잊어버린다는 사실, 그래서 수행이란 결국 '다시 기억해 내는 일'이라는 통찰을 담고 있다.

There are three stages in this journey that I have been on! The first, the social science stage; the second, the psychedelic stage; and the third, the yogi stage.

내가 걸어온 이 여정에는 세 단계가 있다. 첫째는 사회과학의 단계, 둘째는 사이키델릭의 단계, 셋째는 요기의 단계다.

해설: 책 서두에서 람 다스가 자신의 삶을 요약하는 문장이다. 그는 각 단계가 다음 단계의 준비였다고 말하며, 이를 연꽃이 피어나는 과정에 비유한다. 이 세 단계 구도가 1부 «여정» 전체의 뼈대가 된다.

제목의 뜻 — 기억하라, 지금 여기에 있으라

"Be Here Now"라는 말은 람 다스가 인도를 여행하던 시절, 길잡이가 되어 준 미국인 구도자 바그완 다스(Bhagwan Das)에게서 처음 들은 것이다. 앨퍼트가 과거의 기억이나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는 "그냥 지금 여기에 있으라"고 답했다. 이 짧은 권유가 책의 제목이 되었고, 나아가 한 시대의 표어가 되었다. 제목은 명령문이지만 그 어조는 강요가 아니라 초대에 가깝다.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수행 전통이 서로 다른 언어로 가리켜 온 하나의 지점이라는 것이다.

책 자체의 물리적 이력도 제목만큼 상징적이다. 아래 인용이 보여 주듯 이 책은 상업 출판의 산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손에서 시작되어, 판이 거듭될수록 그 수익이 다시 봉사와 수행의 자리로 돌아가는 순환 구조 속에 놓여 있었다.

BE HERE NOW was originally distributed in pamphlet form by Lama Foundation and was subsequently published by Lama Foundation as this book, more than 928,300 copies of which have been distributed by Crown Publishers to date.

«BE HERE NOW»는 본래 라마 재단이 소책자 형태로 배포하던 것으로, 이후 라마 재단이 지금의 단행본으로 출간했으며, 현재까지 크라운 출판사를 통해 92만 8,300부 이상이 유통되었다.

해설: 1977년판에 실린 「A CURRENT NOTE」의 한 대목이다. 이 짧은 기록만으로도 소책자에서 단행본으로, 라마 재단에서 하누만 재단으로 이어진 책의 여정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 적힌 부수는 1977년 시점의 집계로, 이후 판매는 200만 부를 넘어섰다.

네 개의 부 — 책의 구조

PART I PART II PART III PART IV 여정 Journey 한 심리학자의 변모 — 왜 떠났는가 코어 북 손글씨 의식의 흐름 — 무엇을 보았는가 요리책 수행의 실용 매뉴얼 — 어떻게 사는가 그림의 떡 추천 도서 목록 — 어디로 더 가는가 이야기가체험이 되고 체험이실천이 되고 실천이공부가 된다
네 부는 순서대로 "왜 → 무엇 → 어떻게 → 어디로"에 답한다. 앞의 두 부가 체험의 기록이라면, 뒤의 두 부는 독자를 위한 도구다.

1부 — 여정 JOURNEY

하버드 심리학 교수 리처드 앨퍼트가 사이키델릭 연구로 대학에서 쫓겨나고, 인도에서 스승 님 카롤리 바바(Neem Karoli Baba)를 만나 람 다스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자전적 이야기다. 부제는 "변모(The Transformation)". 유일하게 일반적인 산문으로 쓰인 부분으로, 뒤에 이어질 가르침이 어떤 삶에서 나왔는지를 보여 주는 서사적 입구 역할을 한다.

2부 — 빈두에서 오자스로 FROM BINDU TO OJAS

책의 심장에 해당하는 "핵심의 책(The Core Book)"이다. 갈색 재생지 위에 손글씨와 그림이 소용돌이치는 독특한 지면으로, 읽는 책이라기보다 통과하는 경험에 가깝다. 제목은 생명 에너지가 낮은 차원(빈두, bindu)에서 영적 에너지(오자스, ojas)로 변형된다는 요가의 관념에서 왔으며, 형식 자체가 선형적 사고를 흔들어 놓도록 설계되어 있다.

3부 — 성스러운 삶을 위한 요리책 COOKBOOK FOR A SACRED LIFE

부제 그대로 "의식적 존재를 위한 안내서(A Manual for Conscious Being)"다. 명상, 만트라, 호흡, 음식, 공부 모임인 사트상(satsang) 등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수행법을 요리책처럼 조목조목 정리했다. 2부가 비전이라면 3부는 방법이다. 영감은 구체적 실천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이 책의 균형 감각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4부 — 그림의 떡 PAINTED CAKES

더 읽을 책들을 안내하는 주석 달린 도서 목록이다. 제목은 "그림에 그린 떡은 배고픔을 채우지 못한다"는 선(禪)의 격언에서 왔다. 책은 어디까지나 지도일 뿐 여정 그 자체가 아니라는 자기 성찰적 경고를, 책의 맨 마지막 부에 배치한 셈이다. 독서가 수행을 대신할 수 없다는 이 책다운 마무리다.

핵심 이 해설서는 원문을 대신하지 않는다. 영어 원문은 짧은 인용과 번역으로만 앵커처럼 제시하고, 본문은 사상사·문화사의 맥락에서 풀어 쓴 한국어 해설이 중심이다. 인용문이 마음에 닿는다면, 그 자리가 원서를 직접 펼쳐 볼 자리다.
PART I

JOURNEY

여정 — 리처드 앨퍼트 박사가 바바 람 다스가 되기까지

«Be Here Now»의 1부 "Journey"는 하버드 심리학 교수 리처드 앨퍼트(Richard Alpert)가 바바 람 다스(Baba Ram Dass)가 되기까지의 자전적 회고다. 람 다스 자신이 서두에서 이 여정을 세 단계로 정리한다. 첫째는 사회과학의 단계, 둘째는 사이키델릭의 단계, 셋째는 요기(yogi)의 단계다. 세 단계는 단절이 아니라 누적이다. 앞 단계의 경험이 다음 단계의 전제가 되고, 당시에는 무의미해 보이던 사건들이 나중에 필수적인 준비 과정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는 이것을 연꽃이 피어나는 과정에 비유한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특징은 시선의 방향이다. 화자는 언론이 다루는 사건의 외면이 아니라 "이 모든 경험을 통과하는 한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1부는 성공의 정점에서 시작해 지적 환멸, 약물 체험의 절정과 추락, 인도에서의 재구성으로 이어지는 내면의 궤적을 따라간다. 오늘의 독자에게 이 장들은 한 개인의 회심기이자, 1960년대 미국 반문화가 동양 사상으로 방향을 트는 과정을 압축한 문화사적 기록으로 읽힌다.

01

OUR-STORY

우리의 이야기

1부의 서문 격인 짧은 장이다. 제목 "our-story"는 history를 비튼 말장난으로, 이것이 한 사람의 전기(his-story)가 아니라 같은 길 위에 있는 이들이 공유하는 이야기(our-story)라는 선언이다. 람 다스는 자신이 통과해 온 세 단계를 제시하고, 각 단계가 다음 단계를 준비시키는 구조였음을 밝힌다.

주목할 점은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가다. LSD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도, 대중 잡지의 선정적 보도도 아니다. 이 거리두기는 책 전체의 어조를 결정한다. 약물은 이 서사에서 목적지가 아니라 통과 지점으로 다뤄진다.

There are three stages in this journey that I have been on! The first, the social science stage; the second, the psychedelic stage; and the third, the yogi stage.

내가 걸어온 이 여정에는 세 단계가 있다. 첫째는 사회과학의 단계, 둘째는 사이키델릭의 단계, 셋째는 요기의 단계다.

해설: 1부 전체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문장이다. 세 단계는 각각 지식, 체험, 수행에 대응하며, 책의 2부와 3부는 이 셋째 단계를 서구 독자에게 번역하는 작업이다.
02

SUCCESS

성공

1961년 3월, 스물아홉 살의 리처드 앨퍼트는 학문적 경력의 정점에 있었다. 하버드의 네 개 학과에 적을 두고, 예일과 스탠퍼드의 연구 계약을 쥐고 있었으며, 케임브리지의 골동품 가득한 아파트, 메르세데스 세단, 세스나 경비행기, 요트를 소유했다. 미국식 "성공한 사람"의 삶을 목록 그대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장의 핵심은 성공의 목록이 아니라 그 목록을 바라보는 회고의 시선이다. 그는 자신이 진짜 학자가 아니라 학계라는 게임의 능숙한 플레이어였다고 고백한다. 5년간 2만 6천 달러를 들인 정신분석조차 신경증을 해소하지 못했고, 분석가는 마지막 날 "당신은 분석을 떠나기엔 너무 아프다"는 말을 남겼다. 외형의 완성과 내면의 공허 사이의 낙차가 이후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 된다.

But what all this boils down to is that I was really a very good game player.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요약하면, 나는 그저 아주 능숙한 게임 플레이어였다는 것이다.

해설: "게임"은 이 책의 핵심 어휘 중 하나다. 사회적 역할 수행 전체를 게임으로 보는 이 관점은 이후 요가 수행에서 역할 너머의 "나"를 찾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My lecture notes were the ideas of other men, subtly presented, and my research was all within the Zeitgeist

내 강의 노트는 교묘하게 포장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었고, 내 연구는 전부 시대정신의 틀 안에 있었다.

해설: 지식의 소유와 앎의 결여를 가르는 문장이다. 그는 점점 더 많이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지혜로 합산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03

DISSATISFACTION

불만족

불만의 해부가 이어진다. 심리학 이론은 강의실 안에서만 작동했고, 그와 동료들은 "9시에서 5시까지의 심리학자"로 일한 뒤 출근 전과 똑같이 신경증적인 상태로 퇴근했다. 학생과 교수가 서로의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하는 강의실은 그에게 방음실처럼 느껴졌고, 치료자로서는 환자가 자신의 이론에 맞춰 길들여지는 과정을 목격했다. 알지 못한다는 자각, 그리고 앞으로 40년을 그렇게 모른 채 살게 되리라는 은근한 공포가 이 장의 통주저음이다.

전환의 계기는 복도 끝 벽장을 개조한 작은 사무실에서 온다. 그곳에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가 있었다. 두 사람은 술친구가 되고 함께 강의를 개설한다. 1960년 여름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서 리어리는 "신들의 살"이라 불리는 버섯을 먹었고, 앨퍼트가 도착했을 때 남미 여행 계획은 이미 무의미해져 있었다. 찾고 있던 것이 바깥이 아니라 자기 머릿속에 있음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But there was still that horrible awareness that I didn’t know something or other which made it all fall together.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로 꿰어 줄 무언가를 내가 알지 못한다는 끔찍한 자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해설: 성공의 한복판에서 지속되는 결핍의 감각이다. 이 "알지 못함"이 이후 여정 전체를 추동하는 질문이 된다.
I learned more in the six or seven hours of this experience than I had learned in all my years as a psychologist.

이 예닐곱 시간의 경험에서 나는 심리학자로 살아온 모든 세월 동안 배운 것보다 더 많이 배웠다.

해설: 버섯 체험 직후 리어리가 한 말이다. 람 다스는 이를 "강한 발언"이라고만 논평하며 전하지만, 이 한 문장이 하버드 실로시빈 프로젝트의 도화선이 된다.
04

TURNING ON

의식이 켜지다

1961년 3월 6일(원문 기준), 그해 최대의 눈보라가 치던 밤, 뉴턴에 있는 리어리의 집 부엌에서 앨퍼트는 실로시빈(psilocybin) 10밀리그램을 삼킨다. 몇 시간 뒤 홀로 앉아 있던 그의 앞에 학위복을 입은 자기 자신, 즉 "하버드 교수인 나"가 나타나 분리되어 나간다. 사교가, 첼리스트, 조종사, 연인이 차례로 떨어져 나가고, 마침내 평생의 기본 정체성인 "리처드 앨퍼트임" 자체가 사라진다. 그리고 몸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공포가 절정에 달한 순간, 내면에서 조용하고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묻는다. "그런데 가게는 누가 보고 있지?" 모든 정체성과 몸이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온전히 깨어서 이 드라마 전체를 침착한 연민으로 지켜보는 "나"가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 신체적 정체성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그 자리의 발견이 이 장의 사건이다. 새벽 5시에 눈을 치우며 웃는 그를 보고 창가의 부모마저 미소 짓게 만든 일화는, 제도와 불화하면서도 내면의 확신을 신뢰하는 이후 행보의 씨앗으로 제시된다.

뒷부분은 실험의 확장을 다룬다. 동료 과학자들과의 언어가 갈라지는 과정, 약 200명에게 실로시빈을 주고 반응을 수집한 자연주의적 연구, 그리고 반응이 기대와 환경, 곧 세트와 세팅(set and setting)의 함수라는 발견이 이어진다. 감각의 고양에서 타인과의 동질감, 드물게는 모든 형태가 사라진 "화이트 라이트(White Light)"까지, 체험의 위계가 보고된다. 다만 그 절정의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2~3일 뒤 그는 이미 체험을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었다.

As I looked down at my legs for reassurance, I could see nothing below the kneecaps, and slowly, now to my horror, I saw the progressive disappearance of limbs and then torso

안심하려고 다리를 내려다보았을 때, 무릎 아래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이제는 공포 속에서, 팔다리가, 이어서 몸통이 차례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해설: 정체성의 해체가 몸의 소멸이라는 감각적 이미지로 절정에 이르는 대목이다. 사후의 삶을 믿지 않던 그에게 이것은 곧 죽음의 공포였다.
but who’s minding the store?

그런데 가게는 누가 보고 있지?

해설: 이 책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다.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도 그 사라짐을 지켜보는 의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농담처럼 가벼운 물음이 일깨운다. 그는 이 "나"가 삶과 죽음 너머에 있으며, 아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자리였다고 회고한다.
삽화 — 사라지는 몸. 1961년 3월의 밤, 실로시빈 체험 속에서 무릎 아래가, 몸통이 차례로 사라졌다. 공포의 끝에서 남은 것은 사라지는 몸을 조용히 지켜보는 자리 하나였다.
05

COMING DOWN

내려오다

사이키델릭 단계의 한계를 요약하는 짧고 결정적인 장이다. 한 번의 체험으로 영원히 깨어 있게 되리라는 기대는 일찍 무너졌다. 문제는 단순했다. 아무리 실험 설계가 정교해도,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반드시 내려온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시도도 있었다. 다섯 명이 건물에 틀어박혀 3주간 네 시간마다 LSD 400마이크로그램을 복용했다. 내성이 생겨 고원 상태에 머물다가, 건물을 나서고 며칠 만에 그들은 다시 내려왔다. 천국에 들어가 모든 것을 보고 나서 다시 쫓겨나기를 수백 번 반복한 끝에 남은 것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부드러운 우울이었다.

no matter how ingenious my experimental designs were, and how high I got, I came down.

내 실험 설계가 아무리 기발해도, 내가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나는 내려왔다.

해설: 6년간의 탐구가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화학적 절정의 비영속성이 다음 단계, 곧 요가로의 이행을 논리적으로 요청한다.
as if you came into the kingdom of heaven and you saw how it all was and you felt these new states of awareness, and then you got cast out again

마치 천국에 들어가 모든 것이 어떠한지를 보고 새로운 의식 상태를 느꼈는데, 그러고 나서 다시 쫓겨나는 것 같았다.

해설: 에덴 추방의 이미지를 빌린 이 비유는 약물 체험의 구조적 좌절, 즉 도달과 상실의 무한 반복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06

ENVIRONMENTAL CHANGES

환경의 변화

내면의 기준점을 반복해서 확인하면서, 그는 환경의 승인에 점점 덜 의존하게 된다. 1963년 하버드에서 해임되던 날의 기자회견이 그 시금석이다. 기자들과 부모, 동료 모두가 그를 몰락한 패배자로 바라보는 가운데, 그의 내면은 "내가 하는 일은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모두가 동의하는데 혼자만 다르게 느낀다면 그것이 광기의 정의겠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제정신이라고 느꼈다.

이 시기의 통찰 하나가 이후 공동체 실험들의 근거가 된다. 새로운 의식 상태는 그것을 지지해 줄 환경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을 본 사람도 "이봐 샘, 쓰레기 좀 비워"라는 말 한마디에 다시 "쓰레기를 비우는 샘"으로 돌아온다. 같은 시기 리어리와 랄프 메츠너(Ralph Metzner)는 «티베트 사자의 서»가 사이키델릭 체험의 정밀한 지도임을 발견하고 이를 «The Psychedelic Experience»로 다시 쓴다. 동양의 문헌이 처음으로 이 서사에 등장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1966~67년에 이르러 그는 막다른 길에 선다. 리어리도, 메츠너도,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도 인도에 다녀왔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직장도 확신도 소진된 1967년, 사이키델릭 여행의 안내자였던 부유한 청년이 랜드로버로 동방의 성자들을 찾아가는 여행을 제안한다. 그는 LSD 한 병을 챙겨 떠난다. 성자를 만나면 LSD를 건네고 이것이 무엇인지 묻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석 달의 관광 끝에 카트만두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짙은 절망이었다. LSD는 충분히 있었지만, 그것이 보여 줄 정원과 그 후의 추방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verybody was looking at me that way, and inside I felt, “What I’m doing is all right.”

모두가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내 안에서는 "내가 하는 일은 괜찮다"는 느낌이 있었다.

해설: 해임이라는 사회적 추락의 순간에 내면의 확신이 외부의 판정을 이긴다. 실로시빈 첫 체험에서 발견한 "안의 자리"가 실제 삶의 위기에서 작동한 첫 사례다.
It takes a while to realize that God can empty garbage.

신도 쓰레기를 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해설: 초월적 체험과 일상의 통합이라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 첫 정식화다. 3부의 "요리책"이 제안하는 생활 속 수행은 이 문장의 긴 각주라 할 수 있다.
07

BHAGWAN DASS

바그완 다스

카트만두의 히피 식당 "블루 티베탄"에 키 6피트 7인치, 금발 머리에 금발 수염을 기르고 인도 성자의 옷을 입은 미국 청년이 걸어 들어온다. 앨퍼트는 즉시 알아본다. 하버드 교수로, 사이키델릭 대변인으로 살며 늘 서로의 눈에서 "당신은 아는가?"를 확인하던 그가, 마침내 바위처럼 단단한, 어디를 눌러도 그대로인 존재를 만난 것이다. 닷새의 대화 끝에 그는 일등석 일본행 대신, 캘리포니아 라구나비치 출신의 스물세 살 청년을 따라 맨발의 사원 순례를 떠난다.

바그완 다스(Bhagwan Dass)의 훈련은 단순하고 가차 없었다. 과거의 무용담을 꺼내면 "과거를 생각하지 마라, 그저 지금 여기에 있어라", 여행이 얼마나 걸릴지 물으면 "미래를 생각하지 마라, 그저 지금 여기에 있어라". 책 제목이 된 문장은 이 길 위의 대화에서 태어났다. 이야기꾼으로 살아온 그의 게임 전체, 곧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계획과 감정의 드라마가 통째로 무장해제되었고, 남은 것은 침묵과 성가와 하타 요가(hatha yoga) 자세뿐이었다.

여정이 길어질수록 이 청년의 이상한 깊이가 드러난다. 테라바다 불교 사원에서도, 시바파 수행자들 사이에서도, 티베트 카규파 라마들 사이에서도 그는 내부자로 환영받았다. 그리고 어느 밤, 별빛 아래에서 앨퍼트는 전해 1월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임재를 강렬하게 느낀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 경험이 다음 장의 복선이 된다.

Don’t think about the past. Just be here now.

과거를 생각하지 마라. 그저 지금 여기에 있어라.

해설: 책 제목의 출전이다. 심오한 교리가 아니라 길 위에서 반복된 실천적 지시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과거와 미래라는 정신의 두 도피처를 막으면 남는 것은 현재뿐이다.
Emotions are like waves. Watch them disappear in the distance on the vast calm ocean.

감정은 파도와 같다. 그것이 광대하고 고요한 바다 저 멀리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라.

해설: 감정과 동일시하지 않고 그것을 지켜보는 관찰자의 자리를 가르치는 문장으로, 2부와 3부에서 전개될 명상 이론의 씨앗이 여기에 있다.
08

MAHARAJI

마하라지와의 만남

원서에서는 "바그완 다스" 장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1부 전체의 정점이다. 비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바그완 다스는 "나의 구루(guru)를 만나러 산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빌리기 싫었던 랜드로버를 몰아 히말라야 기슭의 작은 사원에 도착한다. 언덕 위 담요를 두른 노인은 다짜고짜 "그 큰 차를 나에게 주겠는가", "미국에서 돈을 많이 벌었는가"라고 묻고, 앨퍼트는 유대인 모금가 집안 출신인 자신도 본 적 없는 노골적인 "수금"이라며 편집증적인 경계심에 사로잡힌다.

그날 저녁 마하라지(Maharaj-ji), 곧 님 카롤리 바바는 그를 불러 앉히고 조용히 말한다. 어젯밤 별 아래 있었다는 것, 어머니를 생각했다는 것, 어머니가 지난해 죽었다는 것, 죽기 전 배가 커졌다는 것. 그리고 눈을 감고 말한다. "비장(spleen)."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사실들이었다. 설명을 찾아 전속력으로 회전하던 그의 마음은, 풀 수 없는 문제를 받은 컴퓨터처럼 회로가 타 버리고 멈춘다. 그 순간 가슴을 찢는 통증과 함께 통곡이 터진다. 슬픔도 기쁨도 아닌 울음이었고, 그가 찾을 수 있었던 유일한 말은 "집에 온 것 같았다"였다.

다음 날 아침 마하라지는 "약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여행용으로 특별히 만든 순도 높은 LSD "화이트 라이트닝" 세 알, 도합 915마이크로그램을 손바닥에 받아 삼킨다. 누구에게든 압도적인 용량이다. 그러나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성자에게 LSD가 무엇인지 묻겠다던 여행의 질문에 대한, 말 없는 대답이었다. 람 다스는 판단을 독자에게 넘긴다. "이제 당신도 내가 가진 데이터를 가졌다."

He leaned back and closed his eyes and said, “Spleen. She died of spleen.”

그는 몸을 뒤로 기대고 눈을 감더니 말했다. "비장. 그녀는 비장 때문에 죽었다."

해설: 합리적 설명의 가능성이 소진되는 순간이다. 사회과학의 범주("남의 일이다")도 약물의 범주("내가 만든 환각이다")도 적용되지 않는 사건 앞에서, 설명하려는 마음 자체가 정지한다.
The only thing I could say was it felt like I was home. Like the journey was over. Like I had finished.

내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집에 온 것 같았다는 것이다. 여정이 끝난 것 같았다. 내가 다 마친 것 같았다.

해설: 통곡의 의미를 스스로 해석한 대목이다. 지적 이해가 무너진 자리에서 도착의 감각이 온다. 1부의 제목이 "여정(Journey)"인 이유가 이 문장에서 완결된다.
삽화 — 별 아래의 생각. 전날 밤 그는 별하늘 아래에서 비장 질환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튿날 스승은 그 생각을 그대로 꺼내 보였다. 설명이 불가능한 이 순간, 통곡과 함께 낡은 삶이 끝났다.
09

ASHTANGA YOGA

아쉬탕가 요가

사원에서의 수련기다. 머물겠느냐는 질문도, 계약도, 서약도 없었다. 옷과 방이 주어졌고 아무도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마하라지는 겉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담요 한 장이 전 재산인 그는 사하지 사마디(sahaj samadhi)라 불리는 상태에 있다고 소개된다. 그러나 제자의 마음속은 훤히 들여다보인다. 라마 고빈다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한 다음 날 "즉시 라마 고빈다에게 가라"는 전갈이 오고, 델리의 식당 구석에서 몰래 먹은 비스킷은 "비스킷은 맛있었느냐?"라는 인사로 돌아온다.

이 투명함의 체험이 가져온 결론은 감시의 공포가 아니라 해방이었다. 부끄러운 생각까지 전부 알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온전한 사랑으로 바라보는 존재 앞에서, 숨길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자유가 된다. 정신분석 5년으로도 지키고 있던 마음의 사적인 방들이 이렇게 열린다.

일상의 스승은 따로 있었다. 침묵 수행자 하리 다스 바바(Hari Dass Baba)는 매일 정오 무렵 나타나 칠판에 한 문장을 쓰고 떠났다. "소매치기가 성자를 만나면 주머니만 본다" 같은 짧은 경구들은 동기가 지각을 결정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아힘사(ahimsa, 불상해)와 진동에 대한 가르침도 "뱀은 마음을 안다"는 한 줄로 압축되었다. 몇 달 뒤 비베카난다의 «라자 요가»를 읽고서야 그는 자신이 파탄잘리(Patanjali)의 여덟 가지 요가, 곧 아쉬탕가 요가(Ashtanga Yoga)를 체계적으로 배워 왔음을 깨닫는다.

If a pickpocket meets a saint, he sees only his pockets.

소매치기가 성자를 만나면, 그의 눈에는 주머니만 보인다.

해설: 칠판 가르침의 대표 격인 경구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의 모양대로 본다는 것으로, 지각의 정화가 수행의 핵심 과제임을 예고한다.
Once you realize God knows everything, you’re free.

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자유다.

해설: 시크교 전통의 격언으로 인용되는 문장이다. 모든 생각이 읽히면서도 사랑받는 체험, 즉 "우리의 본모습은 그 모든 생각 뒤에 있다"는 통찰의 요약이다.
10

RETURN TO THE WEST

서구로의 귀환

1부의 마지막 대목이다. 미국으로 돌아갈 때 그는 마하라지의 이름도, 있는 곳도 말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는다. 단서를 조합해 찾아간 이들은 즉시 돌려보내졌다. 람 다스는 이 기묘한 폐쇄성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읽어 낸다. 당신이 찾는 것은 다른 어디로 갈 필요가 없는 곳, 곧 당신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귀환의 논리는 카르마(karma)다. 그는 자신을 "길 위의 초심자"라 부르며, 풀어야 할 카르마, 곧 미완의 책무 때문에 당분간 서구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배운 것을 나누는 일이 그 책무의 일부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요가를 가르치는 것, 노래하는 것, 사랑하는 것, 각자가 자기만의 수레(vehicle)를 찾으면 된다. 리처드 앨퍼트의 몰락기로 시작한 1부는, 이렇게 바바 람 다스의 소명 선언으로 닫히며 2부의 형이상학과 3부의 수행 매뉴얼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는다.

I have returned to the West for a time to work out karma or unfulfilled commitment.

나는 카르마, 곧 다하지 못한 책무를 풀기 위해 당분간 서구로 돌아왔다.

해설: 인도에 남지 않고 돌아온 이유를 밝히는 문장이다. 도피나 포교가 아니라 "미완의 일을 마무리한다"는 카르마의 논리로 귀환을 설명하는 점이 이 책의 독특한 자기 이해다.
For me, this story is but a vehicle for sharing with you the true message . . . the living faith in what is possible.

나에게 이 이야기는 진짜 메시지, 곧 가능한 것에 대한 살아 있는 믿음을 당신과 나누기 위한 수레일 뿐이다.

해설: 1부 전체를 회수하는 마지막 문장이다. 자서전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전하려는 것은 개인숭배가 아니라 "인간에게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 그 자체다.

연표 — 리처드 앨퍼트에서 람 다스까지

1931
보스턴에서 출생

리처드 앨퍼트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다. 아버지 조지 앨퍼트는 철도 회사 사장을 지낸 변호사로, 브랜다이스 대학 설립에도 관여했다.

1958
하버드 교수진 합류

스탠퍼드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 대학에 부임한다. 이후 사회관계학과, 심리학과, 교육대학원, 보건서비스의 네 부서에 적을 두는 촉망받는 젊은 교수가 된다.

1960
리어리의 버섯 체험

티모시 리어리가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서 실로시빈 버섯을 먹고 "심리학자로서의 전 생애보다 많이 배웠다"고 선언한다. 하버드로 돌아온 그는 실로시빈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1961
첫 실로시빈 체험

3월 초(원문 기준 3월 6일), 눈보라 치던 밤 리어리의 집에서 앨퍼트가 처음 실로시빈을 복용한다. 정체성과 몸이 사라진 뒤에도 깨어 있는 "나"를 발견한 이 밤이 여정의 기점이 된다.

1963
하버드 해임

사이키델릭 연구를 둘러싼 논란 끝에 앨퍼트가 하버드에서 해임되고, 리어리도 대학을 떠난다. 두 사람의 해임은 전국적 뉴스가 되었고, 사이키델릭 논쟁의 상징적 사건으로 남는다.

1964
«The Psychedelic Experience» 출간

리어리, 메츠너, 앨퍼트가 «티베트 사자의 서»를 심리적 죽음과 재생의 안내서로 재해석한 책을 펴낸다. 사이키델릭 운동과 동양 고전이 처음 본격적으로 결합한 사례다.

1966
어머니의 죽음

1월 20일(원문 기준), 어머니가 비장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다. 임종 전 병상에서 모자는 역할을 넘어선 깊은 교감을 나누었고, 이 죽음은 이듬해 마하라지와의 만남에서 결정적 매듭이 된다.

1967
인도행, 마하라지와의 만남

테헤란에서 랜드로버로 출발해 인도에 닿는다. 카트만두에서 바그완 다스를 만나 순례를 따라나서고, 히말라야 기슭에서 님 카롤리 바바(마하라지)를 만나 삶의 방향이 바뀐다.

1968
바바 람 다스로 귀환

마하라지에게 받은 이름 "람 다스"(신의 종)로 미국에 돌아온다. 사원에서 배운 아쉬탕가 요가와 "지금 여기"의 메시지를 들고 강연을 시작하며 새로운 청중을 만난다.

1970
«From Bindu to Ojas»

뉴멕시코의 라마 재단(Lama Foundation)과 함께 «Be Here Now»의 전신인 «From Bindu to Ojas»를 수공예 형태로 제작해 배포한다.

1971
«Be Here Now» 출간

자전적 여정, 그림 명상서, 수행 요리책, 추천 도서 목록을 한 권에 담은 «Be Here Now»가 출간된다. 이후 수십 년간 널리 읽히며 서구 영성 문화의 이정표가 된다.

PART II

FROM BINDU TO OJAS

코어 북 — 갈색 종이 위의 의식의 흐름
빈두 BINDU 생명·성 에너지의 씨앗 오자스 OJAS 영적 광휘, 깨어 있는 힘 수행: 아사나 · 프라나야마 만트라 · 명상 · 절제 에너지의 사다리 — 차크라(에너지 중심) 위로 갈수록 미세해진다
2부의 제목이 말하는 것: 탄트라 요가 전통에서 가장 거친 생명 에너지(빈두)는 수행을 통해 척추의 에너지 중심들을 타고 올라가 가장 미세한 영적 에너지(오자스)로 변환된다. 갈색 페이지 전체가 이 상승의 기록이다.

2부 「빈두에서 오자스로(From Bindu to Ojas)」는 이 책의 심장부다. 갈색 재생지 위에 손글씨와 그림이 한 몸으로 얽힌 108쪽 — 힌두교 염주 말라(mala)의 구슬 수와 같은 숫자 — 의 이른바 "코어 북(core book)"이다. 활자 대신 손으로 눌러 쓴 글씨는 페이지마다 커지고 작아지고 기울고 소용돌이치며 그림 속으로 흘러든다. 뉴멕시코의 공동체 라마 재단(Lama Foundation) 사람들이 손으로 그려 완성한 이 부분은, 책이라기보다 넘겨 가며 통과하는 하나의 시각적 만다라(mandala)에 가깝다. 형식 자체가 첫 번째 가르침이다. 정보를 훑듯이 소비할 수 없게 만들어졌기에, 읽는 이는 한 쪽 한 쪽 앞에 멈추어 서야 하고, 그 멈춤이 곧 이 부가 말하려는 "지금 여기"의 연습이 된다.

제목은 탄트라(tantra) 전통의 용어에서 왔다. 빈두(bindu)는 "점" 혹은 "물방울"로, 성적·생명적 에너지가 응축된 정수를 가리키고, 오자스(ojas)는 그 에너지가 위로 끌어올려져 변환된 영적 활력을 뜻한다. 그러므로 "빈두에서 오자스로"란 낮은 곳의 에너지를 높은 곳의 에너지로 바꾸는 일, 곧 요가 전체의 과정을 한 구절로 요약한 말이다. 내용은 람 다스가 1969~70년 무렵 미국 각지에서 행한 강연 녹취를 압축하고 재배열한 것으로, 심리학 교수였던 리처드 앨퍼트의 언어와 인도에서 돌아온 순례자의 언어가 한 문장 안에서 계속 교차한다.

이 부의 문장은 논증이 아니라 목소리다. 마침표보다 행갈이가 많고, 같은 구절이 만트라(mantra)처럼 되풀이되며, 농담과 경전 인용이 한 호흡에 붙어 있다. 눈으로 빨리 읽으면 흩어지고, 소리 내어 천천히 읽으면 리듬이 살아나도록 설계된 의식의 흐름이다. 실제로 초기 독자들은 이 부를 혼자 또는 여럿이 낭독하는 방식으로 읽었고, 그것이 저자와 제작자들이 의도한 사용법이었다.

Consciousness equals Energy = Love = Awareness = Light = Wisdom = Beauty = Truth = Purity. It's all the Same trip. Any trip you want to take leads to the Same place.

의식은 곧 에너지 = 사랑 = 알아차림 = 빛 = 지혜 = 아름다움 = 진리 = 순수함이다. 전부 같은 여행이다. 네가 택하는 어떤 여행도 같은 곳으로 이어진다.

해설: 코어 북 첫머리의 선언이다. 서로 다른 전통의 낱말들을 등호로 이어 붙이는 이 수학 놀이 같은 문장이, 이후 108쪽 전체를 관통하는 전제 — 모든 길은 하나의 자리로 수렴한다 — 를 미리 보여 준다.

코어 북을 관통하는 열두 가지 사상

여정에의 부름 The Call to the Journey

코어 북은 독자를 청중이 아니라 지원자로 대한다. 이 책이 말하는 여정은 관광이 아니라 변형이어서, 출발한 "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 도착하는 것은 에고가 타 버리고 남은 어떤 정수뿐이라는 것이다. 람 다스는 이 역설을 방사선 벨트를 통과하는 우주 비행, 불속으로 날아드는 나방, 고치 속의 애벌레 같은 비유로 변주한다.

특히 애벌레의 비유가 핵심적이다. 애벌레는 "나비가 되겠다"고 결심해서 나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애벌레로 사는 일이 끝났을 때 저절로 나비가 되기 시작한다. 부름 역시 마찬가지여서, 손을 들고 자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누구도 등을 떠밀지 않았다는 것 — 이 여정은 선택이라기보다 무르익음이라는 것이 이 부의 첫 번째 전언이다.

Do you realize when you go on that journey In order to get to the destination You Can never get to the destination? In the process You Must die … pretty fierce journey … we want volunteers

그 여정에서 목적지에 닿으려면 "너"는 결코 목적지에 닿을 수 없다는 걸 아는가? 그 과정에서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 꽤 사나운 여정이다 … 우리는 지원자를 원한다

해설: "우리는 지원자를 원한다"는 구인 광고의 어투로 죽음을 조건으로 내거는, 코어 북 특유의 유머와 진지함이 겹치는 대목이다.
there's something that pulls a person toward this journey way away back deep inside is a memory

사람을 이 여정으로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 저 깊은 안쪽에 하나의 기억이 있다.

해설: 부름의 원천을 외부의 권유가 아니라 태어나기 이전의 "기억"으로 설명한다. 충만함의 자리를 이미 맛본 적이 있다는 감각이 구도의 동력이라는 것이다.

지금 여기 Here & Now

책 제목이 된 사상이다. 코어 북에서 "지금 여기"는 시간 관리의 요령이 아니라 존재론적 사실로 제시된다. 새벽 3시 47분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지금 몇 시인가"라고 물으면 답은 언제나 "지금"이고, "여기가 어디인가"라고 물으면 답은 언제나 "여기"다. 돌아가는 것은 시계일 뿐, 존재는 항상 영원한 현재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람 다스는 이것을 일상의 장면으로 끌어내린다. 전화가 울리면 그 벨소리가 지금 여기이므로 받으면 되고, 3주 뒤의 약속은 수첩에 적는 그 행위가 지금 여기다. 아이가 계단을 내려오는 아침 식탁은 "붓다가 붓다를 만나는" 최초의 순간이 된다. 미래를 계획하는 일 자체가 아니라, 계획 속으로 도망쳐 현재를 비우는 마음의 습관이 문제라는 것이 이 사상의 정확한 과녁이다.

Now is Now. Are you going to be here Or not? It's as simple as that!

지금은 지금이다. 너는 여기에 있을 것인가, 아닌가? 그만큼 단순한 일이다!

해설: 책 전체의 주제를 두 문장으로 압축한 구절이다. "Be Here Now"라는 제목은 이 물음에 대한 명령형 답변이라 할 수 있다.
You're right here again. What blows your mind is you were here all the time & it's such a cosmic joke

너는 다시 바로 여기에 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건, 네가 줄곧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주적 농담이다.

해설: 수행의 끝에서 발견하는 것이 새로운 장소가 아니라 언제나 있던 자리라는 역설을, 코어 북은 비극이 아니라 농담으로 처리한다.

에고와 참나 Ego and the True Self

"나는 이 몸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코어 북이 우파니샤드와 «바가바타(Bhagavatam)»에서 직접 빌려 온 축이다. 태어나고 병들고 죽는 것은 몸과 인격, 곧 에고이고, 그 뒤에서 이 모든 드라마를 지켜보는 목격자가 아트만(atman), 참나다. 죽음의 공포는 존재의 사실이 아니라 에고의 부서지기 쉬움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설명된다.

흥미로운 것은 람 다스가 이 고대의 명제를 심리학자의 언어로 다시 쓴다는 점이다. 에고는 악이 아니라 "우주에 대한 인지적 틀", 즉 세계를 정리하는 습관의 다발이다. 문제는 그 틀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 있다. 생각을 통해서는 시간과 공간 밖으로 나갈 수 없으므로, 생각의 바깥에 서서 자기 생각을 바라보는 자리 — 그것이 이 부가 가리키는 참나의 자리다.

I am without form, without limit, Beyond Space, Beyond Time. I am in everything, everything is me. I am the Bliss of the Universe.

나는 형상이 없고 한계가 없다. 공간 너머, 시간 너머에 있다. 나는 모든 것 안에 있고, 모든 것이 나다. 나는 우주의 지복이다.

해설: 인도의 성자 람 티르타(Ram Tirtha)의 게송을 코어 북이 그대로 옮긴 대목으로, "나"의 참된 주어가 무엇인지 선언하는 구절이다.
The atman or divine self is separate from the body … pure, self-luminous without attributes free all-pervading it is the eternal witness

아트만, 곧 신성한 자아는 몸과 별개다 … 순수하고 스스로 빛나며 속성이 없고 자유로우며 모든 곳에 편재하는, 영원한 목격자다.

해설: 힌두 경전을 인용한 부분이다. "영원한 목격자(eternal witness)"라는 표현은 이후 서구 명상 문화에서 관찰자 의식이라는 개념으로 널리 통용되었다.
지나가는 생각 지나가는 감정
삽화 — 주시자. 생각과 감정은 날씨처럼 왔다가 지나간다. 코어 북이 가리키는 자리는 그 물결이 아니라, 물결이 지나가는 것을 고요히 바라보는 중심이다.

구루와 내면의 구루 The Guru Within

코어 북에서 구루(guru)를 다루는 대목은 뜻밖에도 고백으로 시작한다. 람 다스는 인도 여정을 이야기할 때면 늘 스승의 기적을 말하게 되지만, 정작 자신에게 기적은 본질이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기적뿐이고, 정작 중요한 것은 말로 옮겨지지 않는다는 것 — 그는 이를 가로등 밑에서 열쇠를 찾는 나스루딘 우화에 빗댄다. 집 안에서 잃어버렸지만 밖이 밝으니 밖에서 찾는다는 이야기다.

그가 도달하는 결론은 구루 숭배의 정반대편에 있다. 구루는 착륙할 활주로가 비기를 기다리며 상공을 선회하는 비행기 같아서, 마음이 고요해지는 만큼 가까워진다. 마하라지(Maharaj-ji)는 지금 이 순간 떠올리는 생각 하나보다 멀리 있지 않으며, 끝내 "네가 곧 구루다"라는 말에 이른다. 바깥의 스승은 안에 이미 있는 것을 비추는 완전한 거울일 뿐이라는 것이다.

when I tell the story of my journey in India and tell of the guru, I always speak of his miracles, although, from my point of view they are not the essence of the matter at all

인도 여정과 구루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늘 그의 기적을 말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기적은 이 일의 본질이 전혀 아니다.

해설: 신비를 팔지 않겠다는 태도가 드러나는 문장이다. 기적담을 늘어놓으면서도 그 한계를 스스로 표시하는 이중의 서술이 이 책의 신뢰를 만든다.
the people who have been sharing this journey with me … have because of their purity made direct contact with the guru in themselves through the purity of their love

이 여정을 나와 함께해 온 사람들은 … 그 순수함 덕분에, 사랑의 순수함을 통해 자기 안의 구루와 직접 만났다.

해설: 인도에 가지 않고도 "안의 구루"에 닿은 이들을 두고 한 말이다. 외부의 스승 없이도 길이 열린다는 이 구절이, 이후 미국식 영성의 자립적 성격을 예고한다.

집착과 욕망 Attachment and Desire

침묵 수행 중이던 스승 하리 다스 바바(Hari Dass Baba)가 석판에 처음 써 준 문장은 "욕망은 덫이다"였다. 코어 북은 이를 붓다의 사성제와 포개어 놓는다. 괴로움의 원인은 갈애이며, 잡으려 하지 않으면 잃음으로 괴로울 일도 없다는 것이다.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콘의 비유가 이 대목의 백미다. 다 먹기도 전에 녹고, 다 먹으면 물이 필요하고, 물을 마시면 다음 콘이 필요한 순환 — 람 다스는 그것을 "인생이라 부른다"고 눙친다.

그러나 처방은 세상을 떠나는 금욕이 아니다. 카르마 요가(karma yoga), 곧 "장작을 패고 물을 긷는" 일상의 행위를 그대로 하되 그 열매에 대한 집착만을 내려놓는 길이다. 산속 동굴이 아니라 부엌과 직장에서 이루어지는 포기 — 총체적 포기(Total Renunciation)라는 강한 말이 가리키는 것은 행위의 중단이 아니라 소유욕의 중단이다.

Desire is a trap. Desire-lessness is moksha (Liberation)

욕망은 덫이다. 욕망 없음이 목샤(해탈)다.

해설: 스승이 석판에 쓴 첫 가르침이다. 목샤(moksha)는 윤회의 속박에서 풀려남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로, 코어 북 전체의 목적지를 가리키는 낱말이다.
Do it without attachment. Another way of saying it is: Total Renunciation!

집착 없이 하라. 달리 말하면, 총체적 포기다!

해설: 이어지는 문장에서 그는 "이것이 동굴로 들어가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 욕망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라는 뜻"이라고 못 박는다. 행위와 집착을 분리하는 것이 카르마 요가의 요체다.

마야와 드라마 Maya and the Drama

코어 북은 현상 세계 전체를 마야(maya), 곧 환영이라 부르는 베단타의 오래된 교설을 "드라마"라는 무대 언어로 번역한다. 욕망도, 생각도, 호흡도, 감정도, 형상을 가진 모든 것이 드라마다. 심지어 이 책 자체도 드라마라고 스스로 밝힌다. 환영이라는 말은 세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세계를 실체로 움켜쥐는 우리의 지각 방식이 연극이라는 뜻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관람의 자세다. 코어 북의 화자는 심장의 동굴에 앉아 자기 삶이라는 드라마 전체를 지켜본다고 말한다. 그때의 시선은 냉소가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연민(Unbearable Compassion)"이다. 무대 위의 배역들이 저마다 진심으로 괴로워하고 있음을 알기에, 환영임을 보는 눈과 아파하는 가슴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겹눈의 시선이 마야론을 허무주의와 갈라놓는다.

Drama is drama is drama is drama. desire is drama. thought is drama. breathing is drama. emotions are drama. all form is drama

드라마는 드라마이고 드라마이고 드라마다. 욕망도 드라마, 생각도 드라마, 호흡도 드라마, 감정도 드라마, 모든 형상이 드라마다.

해설: 거트루드 스타인의 "장미는 장미이고…"를 연상시키는 반복 어법으로, 예외 없이 모든 현상을 무대 위로 올려놓는 선언이다.
we watch the entire drama That Is Our Lives we watch the illusion with Unbearable Compassion

우리는 우리의 삶이라는 드라마 전체를 지켜본다. 우리는 그 환영을 견딜 수 없는 연민으로 바라본다.

해설: 코어 북 도입부 "심장의 동굴" 대목이다. 환영을 꿰뚫어 보는 일과 사랑하는 일이 같은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이 부의 정서적 기조를 담고 있다.

릴라, 신성한 놀이로서의 삶 Life as Divine Play

드라마의 다른 얼굴이 릴라(lila)다. 힌두 사상에서 릴라는 신이 우주를 빚고 굴리는 일을 노동이 아니라 놀이로 보는 관점이다. 코어 북은 아무도 어디론가 가고 있지 않으며, 우리 모두 영원한 시공 안에서 몸을 바꿔 가며 "춤에 이어 춤을" 추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윤회조차 형벌이 아니라 안무가 되는 것이다.

이 관점은 일상의 태도로 곧장 이어진다. 같은 설거지, 같은 보험료 납부도 무거운 짐으로 질 수도 있고 춤의 일부로 출 수도 있다. 람 다스는 이를 "서핑"이라 부른다 — 파도를 없앨 수는 없지만 파도를 탈 수는 있다는 것이다. 시바(Shiva)의 춤과 캘리포니아의 서핑 보드가 한 문단에서 만나는 이 대목은, 인도 형이상학이 미국 대중문화의 감각으로 번역되는 순간을 잘 보여 준다.

nobody is going anywhere nobody is coming from anywhere we're all here … we're just doing lila rasa the divine dance we're dancing & dancing & dancing dance after dance in one body in another body

아무도 어디로 가지 않고 아무도 어디에서 오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여기에 있다 … 우리는 그저 릴라 라사, 신성한 춤을 추고 있다. 이 몸으로, 또 다른 몸으로, 춤에 이어 춤을 추면서.

해설: 릴라 라사(lila rasa)는 크리슈나 신앙에서 신과 헌신자들이 함께 추는 원무를 가리킨다. 삶과 죽음의 반복을 춤의 반복으로 다시 그리는 구절이다.

죽음과 다시 태어남 Dying to Be Born

코어 북에서 죽음은 두 겹으로 다루어진다. 하나는 몸의 죽음으로, 참나의 관점에서는 소멸이 아니라 옷을 갈아입는 변형에 불과하다. 다른 하나는 살아 있는 동안 치러야 하는 에고의 죽음으로, 이쪽이 훨씬 절박한 주제다. "다시 태어나야 천국에 든다"는 복음서의 언어가 여기서는 심리적 사건 — 자아 구조의 해체와 재구성 — 을 가리키는 정확한 기술로 읽힌다.

흥미로운 것은 경고의 대목이다. 에고를 쓴 채로 문을 통과하면 "천국의 사무 존스"가 되어 과대망상에 빠진다고, 람 다스는 정신병원의 메시아 콤플렉스를 예로 들어 말한다. 죽지 않고 태어나려는 시도야말로 위험하다는 것이다. 죽음을 먼저 통과한 자에게만 재생이 안전하다는 이 순서가, 코어 북이 반복하는 "먼저 죽어라"의 실천적 의미다.

there is no fear of death because there is no death it's just a transformation an illusion and yet, seeing all that, you still chop wood and carry water.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죽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변형일 뿐, 환영일 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보고서도, 너는 여전히 장작을 패고 물을 긷는다.

해설: 선불교의 유명한 구절 "깨닫기 전에도 장작 패고 물 긷고, 깨달은 뒤에도 장작 패고 물 긷는다"를 죽음론에 접붙인 대목이다. 초월이 일상을 면제해 주지 않는다는 균형 감각이 담겨 있다.
you gotta die To be born … Only When You have been born Again Do you enter the Kingdom of heaven

태어나려면 죽어야 한다 … 다시 태어났을 때에만 너는 천국에 들어간다.

해설: 기독교의 중생(重生) 개념을 에고의 죽음이라는 요가적 문법으로 다시 읽는 구절이다. 코어 북은 성서를 은유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직설"로 읽자고 거듭 제안한다.
안쪽으로
삽화 — 존재의 큰 바다. 코어 북의 항해 은유를 그렸다. 위대한 존재의 바다를 건너는 이 여정의 목적지는 수평선 너머가 아니라, 나선이 가리키듯 항해자 자신의 안쪽이다.

하나됨 Oneness

코어 북의 우주론에서 세계의 마지막 층위는 음양(陰陽)의 세계, 곧 가장 높은 이원성의 평면이다. 신과 인간, 선과 악, 쾌락과 고통 —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을 사는 곳이 여기다. 거기서 나가는 유일한 길은 모든 대립쌍의 양극을 붙들어 그 둘이 하나임을 보는 것이라고 책은 말한다. 세대 갈등도, 히피와 경찰의 대립도,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 내는 한 벌의 거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됨은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 있다. "존재의 큰 바다를 건너는 여행"이라는 구도의 오랜 은유를, 코어 북은 안으로 파고드는 여행으로 뒤집는다. 더 깊이 들어갈수록 더 많은 진실을 만나고, 끝에서 만나는 것은 남과 나의 구별이 사라진 하나의 존재다. 박티(bhakti), 곧 사랑의 길이 같은 자리에 이르는 지름길로 제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the journey across the great ocean of existence Is a journey inward ever in deeper and deeper and the deeper you get in the more you meet truth

존재의 큰 바다를 건너는 여행은 안으로 향하는 여행이다. 점점 더 깊이, 더 깊이. 그리고 깊이 들어갈수록 더 많은 진실을 만난다.

해설: 바다 건너기라는 힌두교와 불교의 공통 은유(피안으로 건너감)를 내면 여행으로 재해석한, 이 부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 가운데 하나다.
You Just Love UNTIL You and the Beloved become One

그저 사랑하라. 너와 사랑받는 이가 하나가 될 때까지.

해설: 박티 요가의 작동 원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대목이다. 분석이 아니라 사랑이 이원성을 녹인다는, 이 책의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명제다.

고통의 의미 The Meaning of Suffering

코어 북은 고통을 미화하지도, 회피하지도 않는다. 고통은 타파스야(tapasya), 곧 "불로 바로잡음"이다. 우스펜스키를 인용하며, 욕망과 싸울 때 생기는 내면의 마찰이 불을 일으키고 그 불이 내면 세계를 하나로 벼려 낸다고 말한다. 자기연민에 젖는 일 — "이 얼마나 향기로운 신품종 자기연민인가"라고 스스로를 놀리는 대목 — 과 고통을 통과하는 일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역설이 등장한다. 이 여정은 전면적인 고통을 요구하지만, 그것은 "고통이 아닌 고통"이어야 한다. 고통을 다 겪되, 고통받는 "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가 못 박는 병사를 절대적 연민으로 바라보았으리라는 상상은 이 역설의 극한 예시다. 아픔은 일어나되, 아픔의 소유자가 사라진 자리 — 코어 북이 말하는 고통의 연금술이다.

This trip requires total suffering but: It's got to be suffering that is no suffering. You've got to go the whole suffering trip but: You can't be the guy who is suffering

이 여정은 전면적인 고통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 아닌 고통이어야 한다. 고통의 길을 끝까지 가야 하지만, 고통받는 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해설: 고통의 회피(부정)와 고통과의 동일시(익사) 사이의 좁은 길을 가리키는 구절로, 훗날 서구 마음챙김 문화가 "고통은 필연, 괴로움은 선택"이라는 표어로 이어받는 사유의 원형이다.

침묵과 명상적 언어 Silence and Meditative Language

코어 북의 화자는 이상한 고백으로 말문을 연다. "쓰고 있지만 '내'가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심장의 동굴에서는 만트라가 돌아가고 있고, 자신은 그 곁에서 경외와 경이로 지켜볼 뿐이라는 것이다. 말의 표면 아래에 침묵의 층이 깔려 있다는 이 감각이, 이 부의 독특한 문체 — 외치다가 속삭이고, 설교하다가 침묵으로 빠지는 — 를 만든다.

이는 언어에 대한 하나의 이론이기도 하다. 생각하는 마음은 "완벽한 하인이자 형편없는 주인"이며, 말은 진실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진실 쪽으로 몸을 돌리게 하는 손가락이다. 그래서 코어 북의 문장들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낭송을 위해 배열되어 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를 탐부라의 울림, 곧 소리 그 자체로 읽는 대목은 이 언어관의 요약이다.

I am writing but "I" am not writing. Inside of me in the heart cave is a mantra going on that reminds me who I really am

나는 쓰고 있지만 "나"는 쓰고 있지 않다. 내 안 심장의 동굴에서는 만트라가 돌아가며, 내가 정말 누구인지 일깨워 주고 있다.

해설: 코어 북 4쪽의 문장이다. 따옴표에 갇힌 "I"와 그렇지 않은 I의 구별 — 에고와 참나의 구별 — 이 문장 부호 하나로 수행되고 있다.
Behind every word & behind it all Is a mantra Going inside my head In which I am sitting Calmly watching this whole drama unfold

모든 말 뒤에, 이 모든 것 뒤에 만트라가 있다. 내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그 만트라 안에 나는 앉아, 이 드라마 전체가 펼쳐지는 것을 고요히 지켜본다.

해설: 말과 침묵이 적대 관계가 아니라 겹의 관계임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만트라는 말이면서 침묵으로 통하는 문이 된다.

준비됨과 다음 메시지 Readiness and the Next Message

동양의 비밀은 사실 비밀이 아니라고 코어 북은 말한다. 경전과 성직자들은 오히려 소리치고 있는데, 듣는 이의 "머리가 있는 자리" 때문에 그것이 비밀로 남는다는 것이다. 수신기가 그 주파수에 맞춰져 있지 않으면 아무리 크게 방송해도 들리지 않는다. 람 다스 자신도 책들을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리적 인간으로서 찾는 동안에는 자기 그림자만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이 부는 구르지예프(Gurdjieff)의 감옥 비유를 빌려 온다. 탈옥의 첫 조건은 자신이 감옥에 있음을 아는 것이며, 자유롭다고 믿는 죄수는 탈출할 수 없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다음 메시지"는 언제나 있고, 준비되는 순간 들리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배움을 자격이 아니라 무르익음의 문제로 보는 이 관점이, 코어 북이 독자를 다그치지 않고 기다리는 이유다.

You don't seem to understand: You Are In Prison. If you are to get out of prison the first thing you must realize is: You Are In Prison. If you think you're free you can't escape.

너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너는 감옥에 있다. 감옥에서 나가려면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네가 감옥에 있다는 사실이다. 자유롭다고 생각하면 탈출할 수 없다.

해설: 아르메니아 출신의 신비가 구르지예프의 말을 옮긴 대목이다. 습관과 조건화를 감옥으로 보는 이 진단이 모든 수행의 출발점으로 제시된다.
Whenever you're ready you'll hear the next message. The interesting thing is there's always a next message and it's always available to you.

준비되는 순간 너는 다음 메시지를 듣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다음 메시지는 언제나 있고 언제나 너에게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해설: 가르침을 희소한 자원이 아니라 상시 방송으로 보는 관점이다. 문제는 송신이 아니라 수신이라는 것 — 코어 북의 낙관주의가 담긴 결론부의 구절이다.
읽는 요령 2부는 빨리 읽는 부분이 아니다. 원서의 손글씨 페이지를 하루 한 쪽씩, 가능하면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제작자들이 의도한 사용법이다. 문장이 어색하게 끊기거나 반복되는 것은 오류가 아니라 낭송의 리듬이니, 논리를 따라가려 하기보다 목소리를 듣듯 따라가면 된다. 눈이 그림 속을 헤매는 시간까지가 읽기의 일부다.
PART III

COOKBOOK FOR A SACRED LIFE

성스러운 삶을 위한 요리책 — 의식적 존재를 위한 매뉴얼
합일 · ONE 카르마 요가행위 박티 요가헌신 라자 요가명상 즈냐나 요가지혜
요리책의 전제: 요가는 체조가 아니라 "합일에 이르는 길"의 총칭이며, 기질에 따라 다른 길을 걷더라도 봉우리는 하나다. 이어지는 카드들은 그 길 위의 구체적 도구들이다.

«Be Here Now»의 3부는 "성스러운 삶을 위한 요리책(Cookbook for a Sacred Life)"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1부가 람 다스 개인의 전기이고 2부가 의식의 지도를 그린 시각적 경전이라면, 3부는 그 지도를 들고 실제로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실용 매뉴얼이다. 요리책이라는 은유는 정확하다. 요리책은 교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수많은 조리법을 펼쳐 놓고 독자가 자신의 입맛과 형편에 맞는 것을 고르게 할 뿐이다. 책 역시 "모든 사람의 필요는 다르고 모두가 길 위의 서로 다른 지점에 서 있다"고 전제하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지금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고르라고 권한다. 헌사가 말하듯 이 부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싶은 이들(those who wish to get on with it)"에게 바쳐져 있다.

이 매뉴얼은 람 다스 혼자 쓴 것이 아니라 뉴멕시코의 라마 재단(Lama Foundation) 공동체가 함께 정리한 방법론이다. 잠자기, 먹기, 공부, 호흡, 만트라 같은 항목들은 특별한 종교적 재능이 아니라 일상 그 자체를 다룬다. 여기에 이 부의 핵심 사상이 있다. 처음에는 일요일 예배나 아침 명상처럼 정해진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사다나(sadhana, 영적 수행)를 "하지만", 결국에는 "사다나는 당신이 하는 모든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의식적 존재가 되는 일은 삶에서 분리된 취미가 아니라 삶 전체의 재조리라는 선언이 3부 전체를 관통한다.

WARNING: if you don't have room in your livingroom for an elephant— don't make friends with the elephant trainer . . .

경고: 거실에 코끼리를 들일 자리가 없다면, 코끼리 조련사와 친구가 되지 말라…… — 수피 신비가

해설: 서문에 실린 수피 격언이다. 이 길에 발을 들이면 삶 전체가 바뀔 수밖에 없으니, 가볍게 시작할 일이 아니라는 유머러스한 경고이자, 동시에 진지한 초대장이다.

토대와 몸 — 준비, 태도, 몸의 돌봄

서문 Introduction

서문은 겸손의 언어로 시작한다. 저자들은 자신들을 완성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곤경을 연민으로 자각하는" 동료 여행자로 소개한다. 나누는 것도 수행의 일부이고, 듣는 것도 수행의 일부이며,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다. "지금 당신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한다.

이 장은 3부 전체의 사용법이기도 하다. 수록된 기법들은 처방전이 아니라 조리법이고, 무엇을 고를지는 독자의 내면의 목소리가 결정한다. 매일 조금씩, 환영의 구름이 얇아지다가 마침내 빛이 드러난다는 점진적 진화의 감각이 서문의 낙관을 이룬다.

The journey of a thousand miles begins with one step.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 노자

해설: 노자(Lao Tzu)의 이 구절은 요리책 전체의 문턱에 놓여 있다. 거창한 회심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내딛는 한 걸음이 수행의 전부라는 뜻이다.
실천 지금 있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정해진 시간과 장소 안에서 사다나(sadhana)를 하되, 조리법을 고르듯 자신에게 맞는 기법을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선택한다. 결국 사다나가 일상 전부가 되도록 둔다.

준비됨 Readiness

이 장은 해설 없이 "강력한 인용들(Potent Quotes)"만으로 짜여 있다. 전도서, 예수, 라마크리슈나(Ramakrishna), 우스펜스키(Ouspensky), 구르지예프(Gurdjieff), 머튼(Merton)의 목소리가 하나의 주제를 변주한다. 영적 작업은 강요될 수 없고, 때가 무르익어야 시작된다는 것이다. 스승도 제자를 대신해 단 한 걸음도 걸어 줄 수 없으며, 사람은 자신이 익지 않은 것을 알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준비됨의 역설적 조건이다. 구르지예프에 따르면 이 길에 진지하게 들어서는 사람은 먼저 "실망한" 사람이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힘에, 그리고 자신이 기대 왔던 낡은 방식들에 실망해야 새것을 들을 귀가 열린다. 준비됨이란 성취가 아니라 일종의 무르익은 비어 있음이다.

Dislodging a green nut from a shell is almost impossible, but let it dry and the lightest tap will do it.

덜 익은 열매를 껍질에서 빼내기란 거의 불가능하지만, 마르도록 두면 가장 가벼운 두드림으로도 떨어진다. — 라마크리슈나

해설: 억지로 깨우침을 앞당기려는 조급함에 대한 답이다. 수행은 열매를 억지로 따는 일이 아니라 익어 가는 과정을 신뢰하는 일이라는 비유다.
실천 이 장 자체가 하나의 실천이다. 자신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초조해하지 말고, 지금 들리는 만큼만 듣는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처럼, 준비됨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는 것이다.

구루 Guru

이 장은 문답 형식으로 진행된다. 구루를 어떻게 찾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서구적 상식을 뒤집는다. 구루는 찾아서 얻는 대상이 아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채 구루를 찾아 나서면 찾지 못하고, 준비가 되면 구루는 정확히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다. 할 수 있는 일은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것뿐이며, 구루와 첼라(chela, 제자)의 관계는 물리적 차원의 것이 아니어서 이번 생에 스승을 육신으로 만나지 못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교사(teacher)와 구루의 구분도 명료하다. "교사는 길을 가리키고, 구루는 길 그 자체다." 깨어남의 여정에서 수천 명의 교사를 만나게 되지만, 구루는 그 너머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다음 단계에 필요한 메시지는 교사, 연인, 적, 돌멩이, 책, 깊은 절망의 형태로 이미 도착해 있다는 "보물찾기"의 감각이 이 장의 핵심 위로다.

There is a place in each human being where at all times he knows exactly 'where it is at.' So, if in doubt about the next step, just listen. And if still in doubt, wait.

모든 인간 안에는 언제나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아는 자리가 있다. 그러니 다음 걸음이 의심스럽거든 그저 들으라. 그래도 의심스럽거든 기다리라.

해설: 외부 권위에 대한 맹종을 차단하는 구절이다. 히틀러 같은 불순한 카리스마도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정직한 사람에게는 힘을 쓰지 못한다는 문맥 속에서, 최종 판정자는 언제나 내면임을 못 박는다.
실천 구루를 찾아다니지 말고 자신을 정화한다. 책은 연꽃 위의 빛의 존재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를 시각화하며 콧구멍과 입으로 탁한 숨을 내보내고, 옴(OM)·아(AH)·훔(HUM)의 빛줄기로 몸·말·마음을 정화한 뒤 그를 심장에 모시는 관상 수행과, 세 번 반복하는 사보살서원(四菩薩誓願)을 제안한다.

버림 Renunciation

버림이라 하면 새해 결심이나 가족을 떠나 동굴로 들어가는 극적인 행위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 장은 버림을 외적 행위가 아니라 내적 태도로 재정의한다. 욕망 자체는 계속된다. 그것은 자연의 춤의 일부다. 달라지는 것은 "내가 곧 나의 욕망"이라는 동일시의 고리가 끊어진다는 점이다. 욕망을 억지로 없앨 수는 없으며, 지혜가 자라고 사다나에 몰입할수록 욕망이 스스로 떨어져 나간다. 이 과정이 바이라그(vairag, 세속적 욕망의 탈락)다.

비유가 아름답다. 욕망에 끌려다니는 동안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불꽃이지만, 중심으로 돌아오면 바람이 닿지 않는 벽감 속 촛불처럼 고요해진다. 하리 다스 바바(Hari Dass Baba)의 말처럼 뱀의 껍질을 억지로 벗길 수는 없다. 때가 되면 스스로 벗는다.

But renunciation is much more subtle than that—and much harder—and much much more continuing. On the spiritual journey, renunciation means non-attachment.

그러나 버림은 그보다 훨씬 미묘하고, 훨씬 어려우며, 훨씬 더 지속적인 것이다. 영적 여정에서 버림이란 집착하지 않음을 뜻한다.

해설: 이 장의 명제 전체를 압축한 문장이다. 버림(renunciation)을 무집착(non-attachment)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극적인 포기가 아니라 매 순간의 미세한 놓아줌이 수행의 실체임을 밝힌다.
실천 욕망과 싸우거나 욕망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대신 갈망이 스스로 환영의 베일을 짜고 있음을 또렷이 보는 데 집중한다. 동일시가 끊어지면 욕망은 저절로 떨어져 나가며, 마지막에는 지복에 대한 욕망까지도 내려놓는다.

타파스야 Tapasya

타파스야(tapasya)는 "불로 곧게 펴기"로 번역되는 고행 수행이다. 먹는 일에 사로잡혀 있다면 단식하고, 성에 집착한다면 성을 끊는 식으로, 욕망 충족을 의도적으로 중단해 내면에 마찰과 불을 일으키는 기법이다. 우스펜스키의 표현대로 욕망과의 투쟁이 만드는 불이 내면 세계를 하나의 전체로 벼려 낸다.

그러나 이 장의 절반은 경고에 바쳐진다. 고행은 얼마나 고생하는지에 대한 자부심이나 마조히즘으로 변질되어 에고를 오히려 강화할 수 있고, 자기 발달 수준을 넘는 과도한 고행은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해 수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넘어지면 죄책감에 뒹굴지 말고 그냥 일어나라는 것, 천 번 실패해도 천한 번째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 고행의 실제 모습이라는 조언이 현실적이다.

That is, if one is preoccupied with eating and oral gratifications, just fast. If one is obsessed with sexual concerns, just give up sex. And so on. This technique is known as tapasya or “straightening by fire.”

즉 먹는 것과 구강의 만족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냥 단식하라. 성적 관심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냥 성을 끊으라. 그런 식이다. 이 기법이 타파스야, 곧 '불로 곧게 펴기'라 불리는 것이다.

해설: 타파스야의 정의를 담은 대목이다. 고행은 자기 처벌이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 묶여 있는지를 정확히 드러내 주는 진단 도구이자 단련의 불이다.
실천 책이 권하는 대표적 타파스야는 침묵이다. 하루 몇 시간 침묵하는 습관에서 시작해 주 1회 침묵의 날로 늘리고, 긴 침묵에는 목에 거는 작은 석판을 써서 꼭 필요한 말만 적는다. 그 밖에 새벽 4시 기상(4~7시가 수행의 최적 시간), 푹신한 침대 대신 바닥의 얇은 매트에서 자기 등을 제안한다.

Sleeping

잠의 장은 수면을 의식 수행의 연장으로 다룬다. 길이 깊어질수록 필요한 잠은 줄어들지만, 출발점은 언제나 "지금 필요한 만큼 자는 것"이다. 저녁을 자극으로 채우는 서구적 생활에서 벗어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가능하다면 전기 없는 곳에서 일출과 일몰의 자연 질서에 리듬을 맞추라고 권한다.

이 장의 독특한 대목은 꿈에 대한 이론이다. 깊은 잠은 "하나(One)"와 다시 합일하여 프라나(pran, 생명 에너지)을 충전하는 상태이고, 우리가 꿈이라 부르는 것은 물리적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들에서 겪는 경험이다. 만트라로 중심을 잡으면 배우로 출연하면서도 영화를 보듯 자신의 꿈을 지켜볼 수 있게 되며, 이는 깨어 있는 상태 역시 여러 의식 차원 중 하나일 뿐임을 깨닫게 하는 훈련이 된다.

As you get further on the path you will need less and less sleep. Start from where you are. Get as much sleep as you seem to need.

길을 따라 멀리 갈수록 잠은 점점 덜 필요해질 것이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라. 필요해 보이는 만큼 충분히 자라.

해설: 금욕적 수면 단축을 강요하는 대신 현재 상태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요리책 전체의 온건한 방법론이 잘 드러난 구절이다.
실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바닥의 매트 같은 딱딱한 표면에서 등이나 옆으로(왼쪽이 권장된다) 자고, 베개는 없애거나 목 밑에 작은 것만 두어 척추를 곧게 유지한다. 눕기 전 몇 분 명상하고, 잠들 때는 발끝부터 머리까지 차례로 이완하며 생각 대신 만트라를 되뇌면서 의식의 전환을 지켜본다.

먹기 Eating

몸은 "우리가 살며 깨달음의 작업을 수행하는 사원"이며, 먹는 일은 그 사원의 내부 환경을 조율하는 일이다. 다만 책은 급진적 식단 변경이 몸을 상하게 한다는 점을 먼저 경고한다. 보편적으로 옳은 단 하나의 식단은 없으며, 수행자는 여정의 단계마다 다른 음식이 필요하다. 육식을 줄일 때는 통곡물과 채소, 생선, 꿀, 견과로 옮겨 가고, 정화가 깊어지면 식단은 더 가벼워진다. 과식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며, 전통적 기준은 식사 후 위의 절반은 음식, 4분의 1은 물, 4분의 1은 공기로 남겨 두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음식의 "진동"에 대한 관심이다. 살생을 수반하는 음식은 피하고, 불로 조리하는 음식에는 요리하는 사람의 진동이 스며들므로 만트라와 사랑으로 요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음식을 봉헌하면 그것은 프라사드(prasad, 축성된 음식)가 된다. 서구의 식전 기도도 같은 봉헌이니, "이제 기도를 계속하되, 이번에는 그 기도를 들으라"는 재치 있는 조언이 따라붙는다.

There is a state of mind suitable for taking of food—calmness. There is a Sufi saying: “If a person eats with anger, the food turns to poison.”

음식을 먹기에 알맞은 마음 상태가 있다. 고요함이다. 수피의 격언이 있다. '화를 품고 먹으면 음식이 독으로 변한다.'

해설: 무엇을 먹는가만큼 어떤 마음으로 먹는가가 중요하다는 이 장의 요지를 압축한다. 식사는 영양 섭취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儀式)이 된다.
실천 과식하지 않고, 소화가 쉬운 가볍고 순수한 음식을 먹으며, 자극적인 향신료와 커피·차·술을 줄인다. 식단을 단순화하고(매일 같은 메뉴도 좋다), 음식은 만트라와 사랑으로 조리하며, 고요한 마음으로 먹기 전에 음식을 봉헌한다. 책은 기타(Gita)에서 딴 산스크리트 봉헌 만트라를 소개한다.

공부 Study

공부는 만트라처럼 "더 높은 의식의 관념들에 가까이 다가가는 기법"이다. 지식 수집을 숭배하는 문화의 구성원답게 구도자는 대개 독서로 길을 시작하는데, 책은 영적 문헌의 저자를 네 부류로 나눈다. 깨달은 존재, 길 위에서 진지하게 나아가는 구도자, 정교한 지적 모델을 세우는 학자, 그리고 외부에서 "사실"만 좇는 직업적 저술가다. 첫 개관이 끝나면 독서는 자연히 앞의 두 부류로 좁혀진다. 아는 자들, 그리고 자신을 놓고 진지하게 작업하는 자들과 "어울리는" 것이 공부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공부의 둘째 단계는 숙고(reflection)다. 요가난다(Yogananda)의 «어느 요기의 자서전»에 나오는 벵골의 스승 다브루 발라브의 일화가 그 모범으로 제시된다. 제자들은 기타의 한 구절을 반 시간 동안 응시하고, 눈을 감고 또 반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한 시간을 명상한다.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생명력을 준 영적 원천을 찾는 독서다.

No, not fully. Seek the spiritual vitality that has given these words the power to rejuvenate India century after century.

아니, 아직 충분치 않다. 이 말씀들이 세기를 거듭하며 인도를 소생시켜 온 힘, 그 영적 생명력을 찾으라.

해설: 구절의 뜻을 이해했다고 답한 제자에게 스승이 돌려준 말이다. 정보로서의 독해와 변형으로서의 독서를 가르는 경계선이 여기에 있다.
실천 매일의 연습: 기타, 도덕경, 복음서의 예수의 말씀 같은 깨달은 존재의 책에서 한 구절(한 쪽을 넘지 않게)을 골라 읽고 또 읽는다. 자기 말로 바꿔 보고, 자신의 여정에 갖는 함의를 살피고, 조용히 앉아 마음이 그 구절 주위를 맴돌게 한 뒤 고요해진다. 하루 30분이면 결코 길지 않다.

아사나 Asanas

아사나(asana)는 "편안함" 또는 "자리"로 번역되며, 오래 머무를 수 있는 편안한 좌법을 뜻한다. 몸을 다루는 이유는 명료하다. 몸은 이번 생에 우리가 거주하는 환경이고, 가라앉지 않은 몸은 끊임없이 주의를 낚아채 마음의 한곳 집중을 방해하며, 척추를 따라 에너지를 끌어올리려면 몸의 미세한 감각에 민감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합장이나 치켜든 주먹이 각각의 생각과 감정을 동반하듯, 몸 전체는 매 순간 하나의 진술을 하고 있다. 아사나는 몸의 진술을 가슴과 머리의 메시지와 일치시키는 작업이다.

같은 이유로 책은 하타 요가(hatha yoga)를 운동이나 몸 만들기로 접근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아름다운 몸을 목표로 삼으면 딱 그것만 얻는다. 요가로서 행하면 몸의 고요함, 민감함, 가벼움이라는 변형이 온다. 자세에 들어간 뒤에는 조각상처럼 그 자세 안에 완전히 중심을 잡고, "내가 아사나를 하고 있다"는 에고와의 동일시 없이 몸이 움직이는 것을 그저 지켜보라고 말한다.

To remain motionless for a long time without effort is an asana.

애씀 없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머무는 것이 아사나다. — «요가 다르샤나»

해설: 유연성 과시가 아니라 힘들이지 않는 부동(不動)이 아사나의 정의라는 고전의 규정이다. 자세는 성취가 아니라 기도의 한 형태다.
실천 조용하고 평평한 곳에 담요나 매트를 깔고, 가볍고 헐렁한 옷차림으로 혼자 수련한다. 팔 벌려 호흡하기와 몸통 비틀기, 등 구르기로 몸을 풀고, 몸을 앞으로 접을 때 내쉬고 펼 때 들이마신다. 송장 자세(Savasana)에서 시작해 전굴, 코브라, 물고기, 활, 비틀기, 사자, 어깨서기, 쟁기 자세 등 12~15개의 기본 아사나를 자기 속도로 행하고, 다시 송장 자세로 5분간 마친다. 무리하지 않고, 가능하면 교사의 지도를 받되 좋은 교사가 없어도 몸의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나아간다.

만트라 Mantra

깨달음의 길에서 매 단계의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 자신의 생각이다. 생각은 우리를 분리된 존재로 붙들어 두며, 합일에 대한 생각조차 합일 그 자체와는 전혀 다르다. 만트라(mantra)는 이 문제에 대한 기법적 해법이다. 온갖 방향에서 일렁이는 물결로 덮인 호수처럼 산란한 마음에, 의식적으로 하나의 인공 파도를 만들어 넣는 것이다. 하나의 생각을 골라 그것이 지배적이 되게 하면, 한 방향에서 오는 고른 파도가 모든 잔물결을 흡수한다. 다른 생각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들은 하늘의 구름처럼 지나가고, 나는 더 이상 내 생각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자기 생각과의 동일시를 끊는 것이 곧 내적 자유다.

책은 라마(RAMA) 만트라를 예로 든다. 라마야나의 완전한 카르마 요기이자 "참나(Atman)를 깨달았을 때의 당신의 본질"인 라마의 이름을 혀로, 다음에는 뇌로, 마침내 심장에서 울리게 하는 자파(japa, 신의 이름 반복)다. 흥미로운 전복은 마지막에 온다. 만트라를 "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진실로는 만트라가 당신을 하고 있으며, 수행자는 그 손안의 수동적 악기가 된다.

a continuous sequence of even waves all coming from one direction overrides all the choppy water, as an ocean wave absorbs all the eddying waters at the shoreline.

한 방향에서 오는 고른 파도의 연속이 모든 일렁이는 물결을 압도한다. 바다의 파도가 해안선의 소용돌이치는 물살을 모두 흡수하듯이.

해설: 만트라의 작동 원리를 담은 파도 비유다. 생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고른 리듬 하나로 마음의 표면을 고르게 만든다는 점에서, 만트라는 억압이 아니라 조율의 기술이다.
실천 라마(Ra-Ma)를 속으로 발음하다가 내면의 속삭임을 따라 소리 내어 함께 말하고, 걷는 동안에도 계속 이어 간다. 108개의 구슬로 된 말라(mala)를 오른손으로 한 알씩 넘기며 자파를 행한다. 잠에서 깨자마자 만트라로 나오는 습관, 강한 감정이 일 때마다 만트라로 돌아오는 습관을 들인다. 처음에는 아침저녁 15분씩만 하고 만트라가 삶으로 저절로 번져 가게 두되, 에고의 의지로 강제하지 않는다. 샤워, 요리 같은 일상 행위마다의 특별 만트라도 소개된다.
잡념의 잔물결 하나의 파동 만트라의 반복이 물결을 고른다
삽화 — 만트라의 파도. 요리책의 비유를 그렸다. 의식의 수면에 하나의 생각을 규칙적인 파도로 일으키면, 해안의 잔물결이 큰 파도에 흡수되듯 다른 생각들이 그 파동에 흡수된다.

에너지·마음·세상 — 변환과 참여

들숨 · 왼코 4초 날숨 · 오른코 8초 멈춤 2초 4 : 2 : 8 ida 이다 pingala 핑갈라
삽화 — 나리 소단(nadi shodhan) 호흡. 왼쪽 콧구멍으로 4초 들이쉬고, 양쪽을 막아 2초 멈춘 뒤, 오른쪽으로 8초 내쉰다. 날숨마다 콧구멍을 바꾸며, 숨이 척추 양옆의 통로(이다·핑갈라)를 오르내린다고 심상한다.
핵심 3부 「요리책」의 두 번째 묶음은 에너지·마음·세상을 다룬다. 몸에 흐르는 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는가(호흡·성·힘),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사는가(공동체·진실·생계), 그리고 마음을 어디까지 쓰고 어디서 내려놓는가(행위·헌신·명상·이성·시간)에 대한 실용 안내서다. 각 장은 형이상학적 설명과 구체적 연습을 오가며,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높이 머무는 삶"을 위한 조리법을 제시한다.

에너지의 변환 Transmuting Energy

람 다스는 우주 전체를 프라나(pran)라 불리는 하나의 에너지로 본다. 몸도, 생각도, 빛도 진동의 속도와 폭이 다른 프라나의 형태일 뿐이며, 가장 미세한 차원에서 프라나·빛·의식은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이다. 문제는 수행이 진행되어 집착이 풀릴수록 더 높은 진동의 에너지가 유입된다는 데 있다. 낡은 반응 습관의 회로로는 이 늘어난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다.

이때 두 갈래 전략이 있다. 아직 살아 있는 욕망의 충족을 피하고 그 에너지를 정화에 쓰는 길, 그리고 욕망을 의식적으로 다시 충족시키며 그 과정 전체를 지켜보아 욕망을 소진시키는 길이다. 후자는 좌도(ban marg)라 불리는 위험한 길로, 대부분은 실패하고 카르마(karma)만 늘린다고 책은 경고한다. 권장되는 것은 중도다. 낮은 차크라(chakra)를 자극하는 상황을 일부러 찾지도, 굳이 피하지도 않으면서, 마주칠 때마다 그 에너지를 연민으로 변환하는 것 — 이것이 "속된 것을 성스럽게 만드는" 신성한 작업이다.

As you feed in more energy, it is like feeding in a 220 current into a home that is wired for 110.

더 많은 에너지를 흘려 넣는 것은, 110볼트용으로 배선된 집에 220볼트 전류를 흘려 넣는 것과 같다.

해설: 정화 수행의 부작용을 설명하는 이 책의 대표적 비유다. 수행으로 늘어난 에너지는 축복이지만, 새로운 사고 습관이라는 "배선 공사" 없이는 오히려 삶을 태워 버릴 수 있다는 실용적 경고다.
실천 모든 관계를 연민의 관계로 계속 전환한다. 낮은 차크라로 미끄러졌을 때 자책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고, 그 상황을 4번 가슴 차크라의 언어 — 모든 존재를 향한 연민 — 로 다시 정의한다. 실패에 죄책감을 갖지 않되, 천천히 부드럽게 변환을 익혀 가는 것이 중도다.

프라나야마 Pranayam

호흡은 몸에 나타난 프라나(pran)의 대표적 형태이며, 호흡과 생각은 긴밀히 묶여 있어 어느 한쪽을 멈추면 다른 쪽도 멈춘다. 프라나야마(pranayam)는 훈련된 호흡 연습으로 생명 에너지를 다스리는 수행이다. 책은 고급 단계인 쿤달리니(kundalini) 각성 호흡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은 뒤, 초심자가 바로 쓸 수 있는 절차를 상세히 적는다.

조건은 구체적이다. 공복 상태(식후 세 시간)에서, 이른 아침 정화 수행의 일부로, 척추를 곧게 세우고 항문과 회음부를 조이는 물라반다(muhlbandh)를 유지한 채 행한다. 연습은 세 가지다. 시탈리(sheetli)는 혀를 U자 홈 모양으로 내밀어 입으로 들이쉬고 코로 내쉬는 호흡으로, 첫날 다섯 번에서 하루 한 번씩 늘려 쉰 번까지 간다. 바스트리카(bhastrika)는 코로만 하는 빠르고 얕은 풀무 호흡을 30초 단위로 반복한다. 나리 소단(nari sodhan)은 좌우 콧구멍을 번갈아 막는 교호 호흡으로, 들숨 4초·멈춤 2초·날숨 8초의 리듬에 척추 좌우의 이다(ida)와 핑갈라(pingala)를 따라 에너지가 흐르는 심상을 함께 둔다. 딸꾹질이나 통증이 생기면 즉시 중단하고 한두 해 다른 요가에 집중하라는 안전 경고도 빠뜨리지 않는다.

When you calm your breath, there is simultaneous calming of the mind.

호흡을 고요하게 하면, 동시에 마음도 고요해진다.

해설: 프라나야마 전체를 지탱하는 원리다. 마음을 직접 붙잡는 대신 호흡이라는 손잡이를 잡는 것 — 이것이 요가 생리학이 서구 심리학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실천 하루 1~4회, 공복에, 머리·목·가슴을 일직선으로 세우고 앉는다. 시탈리와 나리 소단은 5회에서 시작해 50회까지 늘리고, 바스트리카는 30초 단위로 한다. 들숨마다 순수한 프라나·빛을 미간의 한 점으로 들이고, 날숨마다 몸과 마음의 불순물을 내보내는 심상을 유지한다.

성 에너지 Sexual Energy

몸에는 일곱 개의 정신 에너지 초점, 곧 차크라(chakra)가 있다. 1번은 생존, 2번은 성, 3번은 권력에 대응하며 이 셋은 에고를 유지·강화하는 데 쓰인다. 4번 가슴 차크라의 연민에서 비로소 에고를 넘어서는 영역이 시작된다. 프로이트를 2번 차크라의 대변인으로, 아들러를 3번, 융을 아마도 4번의 대변인으로 배치하는 대목은 이 책 특유의 재치 있는 사상사적 지도 그리기다.

강력한 성 에너지를 다루는 전략은 둘이다. 브라마차리아(brahmacharya)는 성적 금욕을 통해 에너지를 척추 위쪽 높은 차크라로 끌어올리는 길로, 제대로 행하는 이는 박탈감이 아니라 더 높고 지속적인 지복을 경험한다고 한다. 성적 탄트라(tantra)는 각성된 에너지를 영적 차원으로 돌리는 길인데, 전적인 진실과 신뢰, 카르마를 공유하겠다는 합의가 전제된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들의 정직함이다 — 이 책을 함께 만든 누구도 이 방법에 충분히 숙달되지 못해 더 확정적으로 쓸 수 없다고 고백한다. 장은 "사흘 전에는 나도 설탕을 끊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간디의 일화로 끝난다.

The spiritual path can be conceived, from an energy point of view, as the path up the spine … the purification of energy.

영적인 길은 에너지의 관점에서 보면 척추를 따라 올라가는 길 — 에너지의 정화 — 로 이해할 수 있다.

해설: 낮은 차크라에서 높은 차크라로 에너지를 옮기는 일이 곧 수행이라는 이 정의에 따르면, 낮은 차크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모든 에너지 사용은 그 자체로 길을 거스르는 일이 된다.
실천 브라마차리아를 택한다면 프라나야마·만트라·식이 조절과 자극 회피로 에너지를 위로 옮긴다. 탄트라를 택한다면 함께 명상하는 데서 시작해 모든 환상과 생각을 완전히 공개하고, 오르가슴이 아니라 예배가 중심이 되게 한다. 어느 쪽이든 자기 발달 단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싯디 — 힘의 유혹 Siddhis

물 위를 걷는 예수와 의심하다 가라앉는 베드로의 이야기로 문을 여는 이 장은, 수행에서 얻어지는 초자연적 힘 — 싯디(siddhis) — 을 정면으로 다룬다. 마음이 한 점으로 모일수록 힘은 저절로 생긴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각 단계의 힘은 내면 사원의 문을 지키는 사자와 같아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사나워진다. 힘으로 부를 얻고 명성을 얻는 순간 그 욕망의 지배력은 강해지고, 여정은 느려진다.

선을 행한다는 명분조차 안전하지 않다. "좋은 일"에 집착하는 이는 그 집착 때문에 무엇이 정말 이웃에게 좋은지 볼 수 없게 된다는 지적은 냉정하다. 규칙은 단순하다 — 어떤 힘을 쓸까 말까 망설여진다면, 쓰지 마라. 그리고 이 장의 절정은 "우주적 유머"다. 산을 옮기고 싶어 정화를 계속하면 언젠가 산을 옮길 수 있게 되지만, 그 자리에 이르려면 산을-옮기고-싶어-하던-자이기를 버려야 하고, 마침내 힘을 얻었을 때 당신은 애초에 산을 거기 놓은 자가 되어 있으므로 — 산은 그대로 있다.

If you are interested in powers, you’ll get them. That’s the trouble!

힘에 관심이 있다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게 문제다!

해설: 초능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재한다고 인정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뒤집는 구조다. 싯디는 목적지가 아니라 길가의 곁길이며, 마야(maya)의 가장 정교한 유혹이라는 것이 이 장의 태도다.
실천 힘이 나타나도 사용하지 않는다.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라는 원칙을 기억하고, 카르마의 전개 속에서 정말 필요한 힘이라면 저절로 나타나 제 역할을 하도록 둔다. 에고를 위한 힘의 사용만이 진화를 가로막는다.

사트상 — 길벗의 공동체 Satsang

라마크리슈나의 비유가 이 장의 뼈대다. 어린 나무는 짐승에게 밟히지 않도록 울타리를 둘러 보호하지만, 다 자란 나무에는 울타리가 필요 없고 오히려 많은 이에게 그늘을 준다. 영적 성장도 같다. 막 깨어난 직후의 믿음은 흔들리기 쉬우므로, 이 시기에는 같은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사트상(satsang), 곧 상가(sangha)이며, 수도원과 아쉬람(ashram)이 존재하는 이유다.

길이 깊어지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성격이 바뀐다. 우정이든 결혼이든 동업이든, 새로 맺는 관계는 점차 서로의 사다나(sadhana)를 돕는다는 암묵적 — 마침내는 명시적 — 계약 위에 서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최종 상태가 아니다. 중심이 굳건해지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면 어떤 무리와 함께 있어도 상관없어진다. 모든 존재가 의식의 진화 여정 위에 있으며, 다만 환영의 베일이 시야를 가리는 정도만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Bad company is loss, and good company is gain; In company with the wind the dust flies heavenwards; if it joins water, it becomes mud and sinks.

나쁜 벗은 손실이요 좋은 벗은 이득이다. 바람과 함께하면 먼지는 하늘로 오르지만, 물과 만나면 진흙이 되어 가라앉는다.

해설: 이 장의 인용문 중 하나로, 16세기 인도 시인 툴시 다스(Tulsi Das)의 구절이다. 같은 먼지라도 어떤 것과 어울리느냐에 따라 하늘로 오르기도, 바닥에 가라앉기도 한다는 공동체론의 고전적 이미지다.
실천 수행 초기에는 깨달음의 길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로 주위를 채운다. 기존의 가족적·사회적 카르마의 약속은 지키되, 새로운 관계는 서로의 수행을 돕는가를 기준으로 맺는다. 믿음이 굳건해진 뒤에는 울타리를 걷고 그늘을 내어 주는 나무가 된다.

매듭 바로잡기 Getting Straight

여정의 각 단계마다 "집을 정돈"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시금석은 감정이다. 사이가 나빴던 부모를 떠올릴 때 분노나 좌절, 자기연민이 인다면 아직 그 매듭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바로잡는다는 것은 화해의 제스처가 아니라 재지각이다 — 그 사람을 인격과 역할과 몸이라는 포장 너머, 나와 똑같이 진화의 어느 단계에 있는 영적 존재로 전적인 연민 속에서 다시 보는 일이다. 상대의 포장에 집착하는 한 나도 상대도 그 자리에 묶인다.

인도에서는 수행을 계속하려면 부모의 축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축복은 "너를 축복한다"는 말이 아니라, 단 한 순간이라도 서로를 동료 존재로 듣고 상대 안의 신성한 불꽃을 존중하는 것 — 지금 여기에서 공유된 한 초의 영원한 현재 — 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 작업은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좋아하던 음악, 싫어하던 음식, 피해 다니던 장소까지, 모든 낡은 애착이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Everything must be rerun through your compassion machine.

모든 것이 당신의 연민의 기계를 다시 통과해야 한다.

해설: "연민의 기계"라는 표현은 이 작업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 일회적 화해가 아니라, 삶의 목록 전체를 하나씩 다시 돌려 보는 체계적 공정이라는 뜻이다. 걸려 넘어지는 항목이 곧 남은 수행의 방향을 알려 준다.
실천 명상 속에서라도 옛 애착들을 하나씩 다시 방문해 영의 빛 속에서 재지각한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준비가 되었을 때 실제로 찾아가 그 만남을 온전히 현재에 둔다. 여전히 감정이 이는 대상은 만트라(mantra)나 목격자의 빛 아래로 가져와 저절로 떨어져 나갈 때까지 작업한다.

진실 Truth

거짓말의 역학에 대한 분석이 이 장의 출발점이다.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하려면 그 사람을 "그" 또는 "그들", 곧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거짓이 만들어 내는 이 거리감은 결국 거짓으로 얻은 것보다 더 큰 비용을 치르게 한다. 카르마의 작동을 이해하면, 에고를 위해 행한 행위의 결과에서 벗어날 길이 없음이 보인다.

책이 제안하는 성찰은 구체적이다. 자신이 유지해 온 거짓이나 반쪽 진실 하나를 떠올리고 그 부식성 부작용을 관찰한 뒤, 진실이 "알려진다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구루(guru)는 — 아직 그 현현한 모습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 이미 당신에 관한 모든 것을 알며, 그럼에도 당신의 곤경에 연민을 갖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한다. 영의 문제에서 당신은 전혀 취약하지 않다. 그렇다면 진실이 어떻게 당신을 해칠 수 있겠는가.

Truth gets you high. There is no doubt about it. Lies bring you down.

진실은 당신을 드높인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거짓은 당신을 끌어내린다.

해설: 사이키델릭 세대의 어휘인 "high"를 윤리의 언어로 전용한 문장이다. 진실 말하기를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의식 상태를 끌어올리는 수행 — 취하게 하는 것은 약물이 아니라 진실 — 으로 재정의하는 이 책 특유의 화법이다.
실천 자신이 붙들고 있는 거짓 하나를 골라 그것이 만드는 거리감과 부작용을 관찰한다. 모든 것을 아는 구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고 상상하며, 진실 속에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 성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려도 좋다.

드롭 아웃 / 콥 아웃 Drop Out / Cop Out

사회에서 빠져나와야만 수행이 가능한가 — 1960년대의 청년이라면 누구나 품었을 물음에 대한 답이다. 책의 답은 명확하다. 진짜 드롭 아웃은 제도가 아니라 집착에서 빠져나오는 내면의 일이며, 제도만 떠나는 이탈은 곧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덫을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시위와 사회 참여도 부정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와 그들"이라는 양극화 대신, 반대하는 상대 안에서 같은 자리를 보는 의식적 참여가 조건으로 붙는다.

Certainly you must drop out . . . but the drop-out is internal, not external. One drops out of one’s attachments.

물론 그대는 드롭 아웃해야 한다 … 그러나 그 이탈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다. 빠져나와야 할 곳은 자기 자신의 집착이다.

해설: 티모시 리어리의 구호 "Turn on, tune in, drop out"에 대한 람 다스식 교정이다. 빈곤·전쟁·공해 앞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주는 자"라는 역할과의 동일시 없이 돕는 카르마 요가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돕고 나서 감사를 기대하는 것은 "왼손이 오른손에게 감사하는 일"만큼 부조리하다는 비유가 이 장의 정점이다.
실천 반대할 일이 있다면 한 가지 규칙을 지킨다 — 반대하는 상대를 나 자신만큼 사랑할 수 있을 때에만 반대하라. 돕는 일을 할 때는 "누가 주고 누가 받는가"라는 역할 의식이 올라오는 순간을 알아차린다.

돈과 바른 생계 Money and Right Livelihood

돈을 죄악시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 것이 이 장의 균형 감각이다. 돈은 하나의 에너지이며, 모든 에너지에는 저마다의 진동이 실려 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생계를 얻는 방식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곧 자신에게 돌아온다. 따라서 생계 수단은 그 본성상 세상의 편집증과 분리를 키우는 것 — 기만적이거나 착취적인 사업 — 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업은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의식 수준이다. 수행이 진행되면 직업을 바꿔야 할 수도 있고, 지금 직업을 수행하는 방식만 바꾸면 될 수도 있다. 의식이 깊어질수록 어떤 직업이든 빛을 퍼뜨리는 수레가 된다. 다음에 만날 붓다의 성품을 지닌 존재는 버스 기사, 의사, 직조공, 보험 판매원의 모습일 수 있으며, 버스에 오르며 잔돈을 건네는 단순한 춤 속에서 인간의 신성에 대한 믿음이 강해질 것이다.

Money is “green energy.” And any energy you work with brings with it its own vibrations.

돈은 "초록빛 에너지"다. 그리고 당신이 다루는 모든 에너지는 저마다의 진동을 함께 가져온다.

해설: 미국 지폐의 초록색에 빗댄 표현이다. 돈을 에너지론의 틀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불교의 "바른 생계(right livelihood)" 개념을 1970년대 미국 독자의 경제 생활에 직접 연결한다.
실천 마음이 고요해질수록 자신에게 맞는 바른 생계가 무엇인지 더 잘 들린다. 직업 자체를 심판하기보다, 사회적·문화적·경제적 힘들의 총합 속에서 자기 자리를 듣고, 지금 하는 일을 분리의 환영을 줄이는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 묻는다.

카르마 요가 — 행위의 요가 Karma Yoga

«바가바드 기타»에서 크리슈나는 말한다 — 무엇을 하든 하되, 행위의 열매를 나에게 바치라. 일상을 이루는 재료 전부를 합일의 수레로 쓰는 것이 카르마 요가(karma yoga)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어려운 요가인데, 에고를 위해 시작한 행위의 동기를 에고를 넘어선 것을 향한 봉사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핵심 기법은 모든 행위에 "제3의 초점"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도랑을 파는 나와 파이는 도랑 외에, 그 행위를 지켜보는 깨달은 존재 — 크리슈나, 붓다, 그리스도 — 의 눈을 통해 장면 전체를 돌려 보면, "내가 도랑을 판다"는 에고 중심의 곤경에서 풀려나 그저 도랑이 파이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장의 백미는 구르지예프(Gurdjieff)의 "자기 기억"에서 가져온 목격자(witness) 기법의 세밀한 묘사다. 목격자는 평가하지 않고 다만 기록한다. 길을 걷다 짜증나는 일을 만나 목격자를 잃고, 한참 뒤에야 잊었음을 기억하고, 다음에는 분노의 한가운데서 깨어나고, 마침내 분노가 일어나려는 순간 "아, 화가 나려 하는군" 하고 알아차려 그 에너지가 스스로 힘을 잃는 — 수천 번의 경험을 거치는 점진적 과정이 정직하게 그려진다. 수단은 이원적이지만 목표는 비이원적이다. 삼사라(samsara)의 바다를 건너면 배는 두고 간다.

If you can serve a cup of tea right, you can do anything.

차 한 잔을 제대로 대접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해설: 이 장에 인용된 구르지예프의 말이다. 카르마 요가의 요체가 거창한 행위가 아니라 가장 작은 행위의 질에 있음을 압축한다. 온전한 주의 속에서 행해진 사소한 일 하나가 수행 전체의 척도가 된다.
실천 어떤 행위든 그 장면을 깨달은 존재의 머리를 통해 돌려 보거나, 행위의 열매를 신에게 바치거나, "옴(OM)"·"라마(RAMA)" 같은 자파(japa)를 반복한다. 또는 목격자를 세워 "그가 걷고 있다, 그가 화를 내려 한다"라고 평가 없이 기록한다. 목격자를 잃었음을 알아차리는 것 자체가 이미 깨어남의 시작이다.

박티 요가 — 헌신의 요가 Bhakti Yoga

박티 요가(bhakti yoga)는 사랑과 헌신을 통해, 가슴을 통해 합일에 이르는 길이다. 모든 사람에게 언제 어디서나 가장 가까이 있는 요가다. 처음에는 나와 분리된 대상을 사랑하는 이원적 방법이지만, 종착지는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가 하나로 녹아드는 비이원이다. 이 장의 아름다운 재해석 하나 — "사랑에 빠졌다"는 말은 상대가 내 가슴, 곧 내가 사랑 그 자체인 자리를 여는 열쇠였다는 뜻이다. 열쇠를 소유하려는 순간 열쇠를 잃는다.

전통적 형식은 노래·춤·찬팅·기도다. 특히 키르탄(kirtan) — 신의 이름들을 반복해 부르는 노래 — 은 단순한 선율을 두 시간이고 다섯 시간이고 반복하는 동안 겹겹이 열리는 체험을 준다. 인도의 마을에서 남자들이 저녁마다 둘러앉아 하르모니움과 타블라에 맞춰 크리슈나와 람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바잔(bhajan)의 풍경이 소개되는데, 거기서 존중받는 것은 목소리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부르는 이의 영혼의 순수함이라는 관찰이 인상적이다.

God respects me when I work / But he loves me when I sing.

신은 내가 일할 때 나를 존중하지만, 내가 노래할 때 나를 사랑한다.

해설: 이 장에 인용된 타고르(Tagore)의 시구다. 행위의 요가(카르마 요가)와 헌신의 요가(박티 요가)의 차이를 두 줄로 요약한다 — 일은 존중을 얻지만, 가슴을 여는 것은 노래다.
실천 키르탄 음반을 구해 깊이 배어들 때까지 반복해 듣고 따라 부른다. 아마추어들의 모임이라도 함께 부를 기회가 있으면 참여한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노래 — 거기에 싣는 영혼이다. 의례에 대한 지금의 참여 수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에만 다음 층이 열린다.

명상 Meditation

요가에서 명상은 공상이나 숙고가 아니라, 마음을 한 점으로 모으고 마침내 마음의 회전을 완전히 멈추는 훈련된 과정이다. 생각이 우주를 만들어 내는 한, 마음이 완전히 고요해질 때까지 우리는 환영 속에 머문다. 책의 입문 지침은 놀랄 만큼 구체적이다.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자리를 찾고, 30분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자세로 앉아, 첫 주에는 그저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기만 한다.

그다음 단계가 남방불교의 사티파타나 위파사나(satipatthana vipassana), 곧 "순수한 주의(bare attention)"다. 호흡에 따라 오르내리는 복부 근육에 주의를 두고 "오름… 내림…"이라 이름 붙이며, 마음이 떠돌면 어디로 갔는지 기록한 뒤 다시 돌아온다. 생각을 억누르는 것도 하나의 생각이므로, 억누르지 말고 이름만 붙이라는 지침이 핵심이다. 이어서 촛불을 그저 바라보는 트라탁(tratak), 내면의 소리를 하나씩 따라 올라가는 나다 요가(nad yoga)가 소개된다 — 소리의 사다리를 오르는 기법이다.

There are no impediments to meditation. The very thought of such obstacles is the greatest impediment.

명상에는 장애물이 없다. 그런 장애물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가장 큰 장애물이다.

해설: 이 장에 인용된 라마나 마하르시(Ramana Maharshi)의 말이다. "명상이 잘 안 된다"는 생각 자체가 명상의 유일한 방해물이라는 역설로, 기법의 목록 끝에 놓인 해독제 같은 문장이다.
실천 하루 30분, 머리·목·가슴을 일직선으로 하고 앉는다. 첫 주는 마음을 그저 관찰하고, 이후 복부 근육의 오르내림에 "오름·내림"이라 이름 붙이거나 "옴… 하나, 옴… 둘" 하고 호흡을 센다. 떠오르는 생각은 억누르지 말고 이름을 붙인 뒤 과제로 돌아온다. 한 달쯤이면 큰 고요와 평화를 느끼게 된다고 책은 말한다.

이성적 마음 The Rational Mind

이성은 인간에게 달 착륙과 대도시를 주었지만, 전쟁과 공해와 신경증도 함께 주었다. 진화적 관점에서 이성은 우리를 어느 지점까지만 데려가며, 큰 바다를 건너려면 그것을 초월해야 한다. 그러나 한계를 안다고 도구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이성으로 이성을 초월하는 길이 있으니, 곧 추론과 식별을 통한 앎의 길, 즈냐나 요가(jnana yoga)다. 이성의 정확한 한계는 이렇다 — 이성은 아는 자와 알려지는 것을 분리해야만 작동하고, 역설을 다룰 수 없으며, 주관적으로만 경험되는 것을 알 수 없다.

이 길의 마지막 덫은 "모든 것을 알면서 여전히 아는 자로 남고 싶은 욕망"이다. 유한한 지식을 아무리 쌓아도 무한이 되지는 않으므로, 마지막 걸음에서는 아는 자가 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한 연습이 라마나 마하르시의 "나는 누구인가(Who am I?)" — 비차라 아트마(vichara atma)다. 몸도, 다섯 운동기관도, 다섯 감각기관도, 내부 장기도, 생각도 아닌 "나"를 하나씩 벗겨 가다, 마지막에는 머릿속에 두었던 '나'라는 생각마저 내려놓는다.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올라가 그 가지를 잘라 내는 것과 같다고 책은 말한다.

You can only BE it all, but you can’t know it all.

당신은 전체가 될 수는 있어도, 전체를 알 수는 없다.

해설: 즈냐나 요가의 종착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아는 자와 알려지는 것의 이원 구조가 남아 있는 한 앎은 완성되지 않으며, 완성은 앎이 아니라 존재의 형태로만 온다는 뜻이다.
실천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나는 몸이 아니다 — 운동기관이 아니다 — 감각기관이 아니다 — 내부 장기가 아니다 — 이 생각들이 아니다"를 한 단계씩, 각 단계마다 실제로 분리를 경험하며 진행한다. 마지막에는 '나'라는 생각 자체를 내려놓는다. 기술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실행은 지극히 어렵다고 책 스스로 밝힌다.

시간과 공간 Time and Space

책 제목의 요체가 담긴 이 장은 거의 전부가 연습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라 — 나는 어디에 있는가? 답은 언제나 "여기"다. 지금은 몇 시인가? 답은 언제나 "지금"이다. 들릴 때까지 반복하라. 알람을 맞추고 벽에 쪽지를 붙여, 하루에도 몇 번씩 일상 한가운데서 이 두 질문과 마주치게 하라. 어디를 가든, 시계가 몇 시를 가리키든, 우리는 "여기와 지금"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시계와 지구는 제 일을 하게 두고, 당신은 영원한 현재에 머무르라는 것이다.

이 장은 현재에 머무는 것이 무책임이 아님을 역설로 보여 준다. 진정으로 지금 여기에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며, 매 순간 최선의 행동을 할 최적의 힘과 이해를 갖게 된다. 미래를 계획하는 일조차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다 — 다만 "그때"가 "지금"이 되었을 때 온전히 현존한다면. 역설처럼 들리는가? 물론이다. 계속 숙고하라고 책은 답한다.

Ask yourself: Where am I? Answer: Here. Ask yourself: What time is it? Answer: Now.

스스로에게 물어라: 나는 어디에 있는가? 답: 여기. 스스로에게 물어라: 지금은 몇 시인가? 답: 지금.

해설: 책 전체를 두 개의 문답으로 압축한 구절이다. 어떤 형이상학보다 짧은 이 자문자답이 «Be Here Now»라는 제목의 실천적 내용 전부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천 하루 여러 번, 하던 일 한가운데서 두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즉시 답한다. 정해진 시간 동안은 미래도 과거도 생각하지 않는다 — 미래를 생각하지 말라, 그저 지금 여기에 있으라. 과거를 생각하지 말라, 그저 지금 여기에 있으라. 이것이 "영원한 현재"로 들어가는 연습이다.

우파야로서의 사이키델릭 Psychedelics as an Upaya

사이키델릭으로 시작한 저자가 사이키델릭을 어떻게 정리하는가 —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정직한 대차대조표에 해당하는 장이다. 우파야(upaya)는 "방편"이라는 뜻으로, 약물은 여러 방편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그것도 유한한 방편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갇힌 세계관을 깨뜨리는 충격,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주는 짧은 엿봄 같은 효용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내려와야 한다는 것, 경험이 외부 물질에 의존하는 한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화된다는 것, "높이 오르는 것"에 대한 집착 자체가 막다른 골목이 된다는 것을 조목조목 짚는다.

The goal of the path is to BE high, not GET high.

길의 목표는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높이 '있는' 것이다.

해설: 이 장의 결론이자 1부 「Coming Down」의 문제의식에 대한 최종 답변이다. 스승 곁의 한 인도인이 보낸 편지 — LSD는 영적 갈망을 깨우는 데 쓰였다면 그 소임을 다한 것이며 더 복용할 이유가 없다는 — 도 함께 인용되어 있다.
실천 책은 방편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는 인도의 전통적 생애 주기(공부 → 세속 참여 → 집중 수행 → 모든 방편의 내려놓음)를 소개하며, 어떤 방편이든 그것이 준 통찰을 지속적 수행으로 옮기는 순간에 소임이 끝난다고 말한다.

긴 길 — 사다나를 삶 전체로

사다나의 여정 The Course of Sadhana

요리책의 후반부를 여는 이 장은 수행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덫이 될 수 있다는 경고로 시작한다. 사다나(sadhana)는 롤러코스터와 같아서, 새로운 고양 뒤에는 대개 새로운 침체가 따라온다. 첫 각성의 도취가 지나가면 은총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상실감이 찾아오는데, 저자는 이를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영혼의 어두운 밤"에 견준다. 정화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불순물이 오히려 더 크고 거칠게 보이는 역설도 다룬다. 더 깊이 붙잡힌 것이 아니라 더 선명하게 보게 된 것뿐이며, 안쪽 사원으로 갈수록 문을 지키는 사자가 사나워지듯 빛도 함께 밝아진다는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사트바의 덫", 곧 순수함의 덫에 대한 경고다.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하면서 자신의 순수함에 도취되는 상태를 인도에서는 "황금 사슬"이라 부른다. 쇠사슬이 아니라도 사슬은 사슬이라는 것이다. 깨달음은 번쩍하는 즉각적 사건이 아니라 구름층이 서서히 얇아지는 점진적 과정으로 그려지며, 명상으로 물러나는 시기와 시장으로 나아가는 시기가 번갈아 오는 "안팎의 순환"도 수행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장 끝에는 라마크리슈나, 비베카난다, 장자 등의 "강력한 인용문(Potent Quotes)" 모음이 붙어, 이 지도가 여러 전통에서 공통으로 확인된 지형임을 보여준다.

At first you will think of your sadhana as a limited part of your life. In time you will come to realize that everything you do is part of your sadhana.

처음에는 사다나를 삶의 한정된 일부로 여길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사다나의 일부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해설: 수행과 일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점이 이 장 전체의 요지다. 명상 방석 위의 시간만이 아니라 설거지와 출근길까지 수행의 재료가 된다는, 요리책 전체를 관통하는 선언이다.
실천 오르막과 내리막을 모두 여정의 정상적인 국면으로 받아들인다. 정체기(플래토)가 와도 과정은 멈추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그저 계속 간다. "내가 얼마나 순수한가"라는 생각 자체를 경계하고, 자기 처지에 대한 우주적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 죽어가는 옛 자아와 태어나는 새 자아를 모두 부드럽게 대한다.

자리 잡기 Setting

마음이 고요해질수록 안팎에서 작용하는 힘들에 민감해지고, 자극이 적은 환경을 자연스레 찾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서구인이 곧장 요기의 동굴로 들어가는 것을 만류한다. 밀라레파(Milarepa)식 은둔을 흉내 내는 일은 미묘한 에고의 여행이 되기 쉬우므로, 지금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해 삶의 방식이 천천히 자연스럽게 바뀌도록 두라는 것이다. 나방이 불꽃에 끌리듯, 빛이 스스로 당신을 끌어당기게 하라는 이미지가 쓰인다. 구체적 첫걸음은 소박하다. 집 한구석에 "옴 홈(Om Home)" — 무한을 향한 발사대 — 을 만드는 것이다. 방석 하나, 촛불, 향, 존경하는 존재의 사진이면 충분하다.

장의 나머지는 자극의 스펙트럼 반대편, 곧 전면적 규율의 세계를 보여준다. 캘리포니아의 선(Zen) 수행처 타사하라(Tassajara)의 하루가 새벽 4시 기상종부터 밤 9시 반 소등까지 분 단위로 소개된다. 좌선(zazen)과 걷기 명상 킨힌(kinhin), 세 개의 그릇으로 이루어진 오료키(oryoki) 식사 의례까지, 모든 동작이 주의를 모으는 장치다. 이어 람 다스가 몸담았던 라마 재단(Lama Foundation)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적 공동체의 설계도가 제시된다. 생활을 담당하는 베이스캠프와 홀로 침묵하는 은둔처(hermitage)의 이중 구조, 명시적 계약과 자발적 참여, 그리고 이사할 때 부엌보다 명상실을 먼저 꾸미라는 조언이 그것이다. 구조는 무겁지만 분위기까지 무거울 필요는 없으며, 가벼운 기쁨의 스타일이야말로 공동체를 지탱한다고 덧붙인다.

Just as water wears away stone, so daily sadhana will thin the veil of avidya (ignorance).

물이 돌을 닳게 하듯, 날마다의 사다나는 아비디야(avidya), 곧 무지의 장막을 얇게 만들 것이다.

해설: 극적인 돌파가 아니라 반복의 힘을 믿는 문장이다. 매일 같은 구석에서 같은 의례를 되풀이하는 일이 곧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일이라는, 요리책다운 실용적 낙관이다.
실천 집 안에 명상 전용 구석을 만들고 단순하고 정갈하게 유지한다. 잡담, 다른 책, 잠 등 다른 용도로 쓰지 않는다. 아침저녁 15분씩 만트라로 시작하고, 함께 사는 이들이 있다면 공동 명상실을 가장 먼저 마련한다. 공동체를 꾸린다면 베이스캠프와 은둔처를 나누고, 24시간에서 3주까지의 은둔 기간을 서로 지원한다.

가족 사다나 Family Sadhana

1970년대 서구에서 가족 단위의 수행은 가장 어려운 길로 진단된다. 산업혁명과 화폐 경제가 영적·심리적 결합체로서의 가족을 사실상 해체했고, 구성원들은 흩어져 "경제와 취침의 단위"로만 함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학교와 보육 기관은 아이를 기존 사회의 "좋은 구성원"으로 길러낼 뿐, 영적 토대를 줄 수 없다. 전망은 어둡지만, 저자는 지난 십 년 사이 일어난 영적 부흥 — 그가 반쯤 농담처럼 열거하는 원인은 환각제, 원자폭탄, 로큰롤, 동양에서 온 스승들, 그리고 문명 한가운데의 공허다 — 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본다.

출발점은 어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spirit)은 라틴어로 숨(breath)을 뜻한다. 숨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것(no thing)"이 삶 전체의 토대이며, 가족 사다나는 가족의 모든 것을 이 영에 바치는 데서 시작한다. 그다음은 지극히 현실적인 점검이다. 바지는 몇 벌이 필요한가, 어떤 음식과 어떤 집이 필요한가 — 욕망이나 환상이 아니라 진짜 필요를 따져보라는 것이다. 영성과 살림살이를 한 문장 안에 놓는 이 감각이 장 전체의 개성이다.

The family and all it is thru/by/in extension must be dedicated solely to the spirit.

가족과, 가족에 딸리고 가족으로부터 뻗어 나가는 모든 것은 오직 영(靈)에 바쳐져야 한다.

해설: 가족 수행의 제1원리다. 수행을 가정생활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가정생활 전체의 방향을 먼저 정하고 나머지를 그 위에 세우라는 순서의 선언이다.
실천 가족의 삶 전체를 영에 바친다는 방향을 먼저 합의한다. 그 위에서 의식주의 진짜 필요를 정직하게 목록으로 만든다. 필요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규모를 정하는 것이 가족 수행의 물질적 기초가 된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How Now

이 장은 가족 사다나의 각론이다. 수입이 줄어도 되는가, 줄이지 않아도 되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지금의 생계를 영적 작업에 맞출 수 없다면 자급 경제로의 전환을 권한다.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딱 살아갈 만큼. 낡은 농장을 사거나 작은 공방을 차리라는 제안의 이유는 소박하다. 그런 곳에서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에게 할 일이 있고,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과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동안 신뢰와 열림이 자라고, 가족은 하나의 심리적 유기체가 되어 간다.

환경이 마련되면 집 전체를 성소로 바꾼다. 박티(bhakti) 성향이면 성화(聖畵)로 벽을 채우고, 선(Zen)에 가깝다면 무(無)를 반영하는 식으로 — 어떤 길이든 온 환경이 그 길을 뒷받침하게 하라는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나 함께 명상하고, 모든 음식과 행위를 영에 바치는 규칙적 일과가 이어진다. 부부는 서로에게서 신성을 보고 — 시바와 샥티(Shiva-Shakti), 해와 달 같은 결혼의 모델들이 열거된다 — 아이들은 참된 고향에서 갓 도착한 스승으로 존중된다. 다만 저자는 냉정하게 못 박는다. 하루 10분, 20분씩 영을 "끼워 넣는" 일정 조정으로는 되지 않으며, 결국 전부 아니면 전무라고. 그래서 비슷한 뜻을 가진 가족들이 모이는 영적 공동체가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된다.

The work is clear and definite. Jesus was a carpenter. Gandhi spun.

그 일은 명료하고 분명하다. 예수는 목수였다. 간디는 물레를 돌렸다.

해설: 거룩함과 노동을 잇는 짧고 강한 문장이다. 농사와 수공예 같은 단순하고 분명한 일이야말로 가족이 함께 설 수 있는 땅이라는 주장에, 목수 예수와 물레 잣는 간디가 보증인으로 소환된다.
실천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생계 — 농장, 공방, 자연식품 가게, 서점 등 — 를 택한다. 집을 각자의 길에 맞는 성소로 꾸미고, 기상·명상·기도·식사의 규칙적 일과를 세운다. 아이들과 함께 만트라를 노래하되, 영적 필요라는 명분으로 아이들과의 관계를 희생하지 않는다.

혼자 사는 이의 사다나 Sadhana If You Live Alone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유연함이라는 선물이 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소리 내어 만트라를 외고, 종을 울리고, 단식을 하고, 말총 매트리스 맛이 나는 특별식을 먹어도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없는 "따뜻한 침묵의 고치" 속에서 지낼 수도 있다. 저자는 목격자(witness) 훈련을 위한 유쾌한 방법도 소개한다. 자신의 행동을 3인칭으로 중계하는 것이다 — "그는 지금 냉장고로 향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생각 중이다. 대신 프라나야마를 하기로 했다." 이런 실황 중계는 목격자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상적인 룸메이트가 되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는 농담이 붙는다.

그러나 혼자 사는 이는 모든 길 중 가장 어려운 카르마 요가(karma yoga)를 연습할 기회가 적다. 부대끼며 사는 데서 오는 탄력성이 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 센터에서 가르치는 일처럼 깊은 수준의 상호작용이 있는 활동으로 균형을 잡으라고 권한다. 장은 고독의 재정의로 끝난다. 문을 닫고 방을 어둡게 하고 안을 들여다보면, 문은 열려 있고 불은 켜져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Solitude does not mean that you are really living alone, even if you seem to be living alone.

고독은 당신이 정말로 혼자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설령 혼자 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해설: 외로움과 고독을 가르는 문장이다. 안으로 향하는 이에게 고독은 결핍이 아니라 동반의 다른 형태라는 것 — 혼자 사는 수행자를 위한 이 짧은 장의 결론이다.
실천 혼자만의 자유를 활용해 이른 기상, 소리 내는 찬팅, 단식, 침묵 등 온전한 수행 일과를 짠다. 자기 행동을 3인칭으로 중계하며 목격자를 기른다. 다만 가르치기, 봉사 같은 깊은 관여의 자리를 일부러 찾아 카르마 요가의 균형을 맞춘다.

죽어감 Dying

요리책의 마지막 장은 죽음을 수행의 바깥이 아니라 한가운데에 놓는다. 문을 여는 것은 간디의 일화다. 네 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 간디는 "람(RAM)"이라는 신의 이름을 불렀고, 인도의 리시(rishi)들은 신의 이름을 부르며 죽는 이는 곧바로 "저 너머의 너머"로 간다고 말한다. 이 장의 핵심 제안은 죽음을 미리 연습하라는 것이다. 불교의 명상 수행, 영원의 관점(sub specie aeternitatis)에서 삶을 보는 그리스도교 관상,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이 모두 자기 죽음을 통과하는 훈련으로 소개된다.

가장 길게 인용되는 것은 라우라 헉슬리(Laura Huxley)의 심리적 죽음 연습이다. 어두운 방에 누워 자기 몸이 이미 죽었다고 상상하고, 자신의 장례식 — "마지막 파티" — 에서 울고 소리치고 다 쏟아낸 뒤, 사랑받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게 마침내 사랑의 행위를 하고, 그 존중과 사랑의 감정을 지닌 채 살아 있는 몸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와 «이집트 사자의 서»는 죽어감이라는 에너지 변환의 춤을 안내하는 오래된 매뉴얼로 소개되고, 매 순간의 놓아버림 — 목표, 자아상, 통제욕을 내려놓고 "함(DO)" 대신 "있음(BE)"으로 돌아가는 일 — 이 곧 작은 죽음이자 재탄생으로 읽힌다. 자살은 이와 정반대로, 에고에 대한 집착의 표현이므로 해방이 아니라 속박이라는 구분도 분명히 한다.

후반부는 타인의 죽음 곁에 있는 법을 다룬다. 죽어가는 이와 의식을 나누며 그가 의식적으로 죽도록 돕는 일은 보살(Bodhisattva) 역할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으로, 오히려 찾아 나서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함께 명상하고, 존재로만 가르치고, 물을 때에만 진실을 말하고, 죽어가는 사람 안에서 영원한 것만을 보라는 구체적 지침이 이어진다. 그리고 산과 바다 가까이에 "죽어가는 이들과 태어나는 이들을 위한 센터"가 세워지는 날을 꿈꾸는 대목이 나온다. 이 문장은 훗날 현실이 된다. 람 다스는 1980년대 초 스티븐 레빈 등과 함께 죽어가는 이들을 동반하는 임종 프로젝트(Dying Project)를 시작했고, 의식적 죽음은 만년의 그를 대표하는 주제가 되었다. 장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아일랜드(Island)» 속 임종 장면 — "가볍게, 가볍게" 맑은 빛 속으로 몸을 놓아 보내는 장면 — 으로 닫힌다.

You must live before you can die. But you must die before you can live. Live consciously! Die consciously!

죽을 수 있으려면 먼저 살아야 한다. 그러나 살 수 있으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 의식적으로 살라! 의식적으로 죽으라!

해설: 장 전체를 요약하는 교차 대구다. 에고의 죽음이 참된 삶의 조건이고, 충만하게 산 삶이 좋은 죽음의 조건이라는 순환 — 죽음 준비와 삶의 수행이 하나의 일임을 못 박는다.
실천 라우라 헉슬리의 연습처럼 자신의 죽음을 심리적으로 미리 통과해 본다. 몸이 긴장으로 굳어 있음을 알아차릴 때마다 "람" 같은 신호어로 욕망과 에고에 죽고 호흡으로 되돌아온다. 죽어가는 이의 곁을 피하지 말고 함께 명상하며, 물을 때에만 진실을 말하고, 그 사람 안의 영원한 것만을 본다.
핵심 1971년의 이 장에 담긴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센터"의 비전은 책 바깥에서 긴 생애를 얻었다. 람 다스는 이후 임종 프로젝트(Dying Project)를 공동으로 시작해 의식적 죽음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고, 1997년 뇌졸중 이후의 저작들에서 자신의 노화와 죽음 자체를 수행의 교재로 삼았다. «Be Here Now»의 요리책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다.
PART IV

PAINTED CAKES

그림의 떡은 배고픔을 달래지 못한다 — 추천 도서

책의 마지막 부는 추천 도서 목록이지만, 그 제목부터가 목록에 대한 경고다. "그림의 떡(painted cakes)은 배고픔을 달래지 못한다"는 선(禪)의 오랜 격언 — 한자 문화권에서 화중지병(畵中之餠)으로 알려진, 그림의 떡은 굶주림을 채울 수 없다는 말 — 에서 온 제목이다. 도겐(Dogen) 선사가 같은 화두를 뒤집어 사유했을 만큼 선불교에서 유서 깊은 이 이미지는, 여기서 명료한 하나의 뜻으로 쓰인다. 책은 지도일 뿐 영토가 아니고, 메뉴판일 뿐 식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깨달음에 관한 문장을 아무리 읽어도 그것이 깨달음은 아니며, 독서는 수행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경고 바로 뒤에 수백 권의 책 목록이 이어진다는 사실이 이 부의 매력적인 역설이다. 지도가 영토는 아니지만, 길 떠나는 이에게 지도는 여전히 요긴하다. 람 다스는 목록을 세 층위로 나눈다. 늘 곁에 두고 벗처럼 지낼 책, 이따금 찾아갈 책, 그리고 한 번 만나 두면 좋은 책. 경전과 성인전에서 헤세의 소설과 공상과학까지 아우르는 이 목록은 1970년대 초 미국 대항문화가 실제로 읽던 영적 서가의 스냅사진이기도 하다. 다만 순서를 잊지 말라는 것이 제목의 당부다. 떡 그림을 아무리 모아도, 떡은 부엌 — 곧 요리책의 수행 — 에서만 나온다.

세 개의 서가

늘 곁에 둘 책 Books to Hang Out With

"함께 어울려 지낼 책"이라는 제목 그대로, 읽고 치우는 책이 아니라 평생 곁에 두고 거듭 돌아갈 원전들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여러 번역본이 나란히 소개될 만큼 목록의 중심에 있고, 킹 제임스 성경, «담마파다», «우파니샤드», 노자의 «도덕경», «주역», 에반스-웬츠의 티베트 총서가 그 곁에 놓인다. 라마크리슈나의 복음, 라마나 마하르시의 대화록, 메허 바바의 강론, 요가난다의 자서전처럼 살아 있는 스승들의 육성을 담은 책들도 이 층위에 속한다. 힌두교, 불교, 도교, 그리스도교, 수피즘이 한 서가에 나란히 꽂히는 구성 자체가 이 책의 절충주의를 보여준다.

이따금 찾아갈 책 Books to Visit with Now & Then

매일 곁에 둘 필요는 없지만 때때로 방문할 가치가 있는 책들이다. 루미의 강론, 오로빈도의 잠언, 블레이크와 릴케와 휘트먼의 시, 테야르 드 샤르댕의 진화 신학, 구르지예프와 우스펜스키의 "제4의 길", 토머스 머튼의 수도원 일기, «블랙 엘크는 말한다», 소로의 «월든», 헤세의 «싯다르타»와 «동방순례»가 이 층위에 있다. 원전 목록에는 그 아래 한 단계, "한 번 만나 두면 좋은 책(Books It's Useful to Have Met)"도 있는데, 여기에는 카스타네다와 부버, 키르케고르뿐 아니라 톨킨과 하인라인, 아시모프의 소설까지 포함된다. 영적 서가가 SF와 판타지까지 뻗는 이 너비가 1971년이라는 시대의 표정이다.

새로 추가된 책 New Additions

후속 쇄를 거치며 목록 끝에 덧붙은 짧은 갱신 기록이다. 사트 프렘의 오로빈도 평전, 루미의 «마스나비», 하즈라트 이나야트 칸의 «수피 메시지», 순류 스즈키의 «선심초심(Zen Mind, Beginner's Mind)», 시르디 사이 바바의 전기가 추가되었다. 목록 뒤에는 새뮤얼 와이저, 샴발라, 보리수(Bodhi Tree) 같은 동양·신비주의 전문 서점들의 주소가 이어지는데, 인터넷 이전 시대에 이런 책을 구하는 일 자체가 하나의 순례였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료다. 책이 살아 있는 문서처럼 자라났다는 점에서, 이 부록은 «Be Here Now»가 완결된 경전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는 공동체의 기록이었음을 증언한다.

Bhagavad Gita 바가바드 기타
전사 아르주나와 크리슈나의 대화로 이루어진 힌두교의 핵심 경전.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행위, 곧 카르마 요가의 원천으로서 이 책 2·3부의 사상적 뼈대이기도 하다. 목록에는 아널드, 마스카로, 프라바바난다·이셔우드 등 여러 번역본이 나란히 실려 있다.
Tao Te Ching 도덕경
노자(Lao Tzu)의 짧은 고전. 애쓰지 않는 행위와 "지금 여기"의 감각은 이 책 전체의 어조와 깊이 공명한다. 블레이크니, 위터 비너 등 여러 영역본이 함께 소개된다.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티베트 사자의 서
에반스-웬츠(Evans-Wentz)가 편집한 티베트 불교의 임종 안내서. 죽음과 재탄생 사이의 바르도(bardo)를 통과하는 매뉴얼로, 요리책의 「죽어감」 장에서 직접 활용되며 람 다스와 리어리의 전작 «The Psychedelic Experience»의 원형이기도 하다.
The Gospel of Sri Ramakrishna 라마크리슈나의 복음
19세기 벵골의 성자 라마크리슈나의 대화를 제자 M.이 기록한 방대한 책. 원전 목록에는 "매우 높은 박티(bhakti)의 책"이라는 짧은 주석이 붙어 있다. 헌신의 길을 대표하는 한 권이다.
Talks with Sri Ramana Maharshi 라마나 마하르시와의 대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탐구(Vichara Atma)로 유명한 남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르시의 문답집. 목록은 그의 저작 여러 권을 묶어 소개하며 뉴욕의 아루나찰라 아쉬람에서 구할 수 있다는 안내까지 곁들인다.
Meher Baba, Discourses 메허 바바 강론집
수십 년간 침묵 서원을 지키며 몸짓과 글로만 가르친 인도의 스승 메허 바바의 네 권짜리 강론집. «갓 스픽스(God Speaks)» 등 그의 생애를 다룬 책들과 함께 실려 있다.
Autobiography of a Yogi 어느 요기의 자서전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자서전. 원전 목록의 주석은 인도가 실제로 어떤 곳인지 실감하게 해 주는 책이라고 소개한다. 서구에 크리야 요가를 알린 고전으로, 인도 순례를 꿈꾸던 세대의 입문서였다.
Zen Mind, Beginner's Mind 선심초심
「새로 추가된 책」에 실린 순류 스즈키 로시의 법문집. 흥미롭게도 스즈키는 요리책 「자리 잡기」 장에 하루 일과가 통째로 소개된 선 수행처 타사하라를 세운 바로 그 스승이다. 목록과 본문이 한 인물에게서 만나는 지점이다.
GLOSSARY

용어집

책을 여는 산스크리트어 열쇠들
일러두기 아래 풀이는 책 말미의 용어집(GLOSSARY)과 본문에서 실제로 쓰이는 용법을 기준으로 정리한 것이다. 같은 단어라도 힌두교·불교 전통 일반의 정의와는 뉘앙스가 다를 수 있으며, 여기서는 «Be Here Now»가 그 말을 어떤 뜻으로 쓰는지에 초점을 둔다.
Sadhana 사다나
영적 길·작업·수련을 통칭하는 말. 이 책 3부 전체가 "당신의 사다나를 위한 요리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을 만큼, 책의 핵심 실천 개념이다.
Satsang 사트상
"길 위의 일꾼들"의 모임 또는 공동체. 책은 순수한 안내자(사트 구루), 순수한 동반자(사트상), 순수한 봉사(사트 세바)를 한 묶음으로 제시한다.
Guru 구루
영적 안내자·스승. 책에서 구루는 정보를 주는 교사(teacher)와 구별되며, 궁극적으로는 "당신 자신 안에 있는 존재"로 설명된다.
Maharaj-ji 마하라지
"위대한 왕"이라는 뜻의 존칭으로, 제자들이 님 카롤리 바바(Neem Karoli Baba)를 부르던 애칭이다. 이 책 1부의 회심 서사 전체가 그와의 만남을 축으로 돈다.
Karma 카르마
문자적으로 "행위". 생각·말·행동이 퍼져 나가며 결과를 낳는 인과의 법칙. 책은 서구 귀환조차 "카르마를 풀기 위한 일"로 서술한다.
Dharma 다르마
우주적 법칙, 곧 "길(the Way)". 개인 차원에서는 각자가 따라야 할 본분과 결을 뜻한다.
Maya 마야
현상 세계, 곧 우리가 실재라고 착각하는 감각적·개념적 세계. 책에서는 새로 얻은 능력(싯디)마저 "마야의 유혹 하나가 더 늘어난 것"으로 경계된다.
Lila 릴라
신의 유희, 우주적 놀이. 세계를 심각한 과제가 아니라 춤과 연극으로 보는 관점으로, 2부의 그림-만다라 부분이 이 감각 위에서 움직인다.
Samadhi 사마디
마음이 하나로 모인 상태. 주체와 대상의 구분이 사라진 흐트러짐 없는 합일을 가리키며, 책 용어집은 그 최고 단계를 니르비칼파 사마디(nirvikalpa samadhi)라 부른다.
Chakra 차크라
문자적으로 "바퀴". 몸의 신경총과 연관되는 심리·에너지의 소용돌이 지점들로, 책은 일곱 개의 차크라를 의식의 등불에 비유한다.
Kundalini 쿤달리니
척추 기저부에 잠들어 있다가 요가 수련으로 뱀처럼 깨어나, 차크라의 등불을 차례로 밝힌다고 이야기되는 에너지.
Prana 프라나
생명 에너지. 책 용어집은 프라나의 낮은 형태를 빈두(bindu), 가장 높은 형태를 오자스(ojas)로 구분해 적어 둔다.
Pranayama 프라나야마
호흡의 조절을 통한 프라나의 조절. 3부 요리책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안내되는 수련 중 하나다.
Mantra 만트라
차크라를 울려 심리 상태를 변화시키기 위해 쓰이는 말·음절·구절. 책은 만트라를 지적 이해가 아니라 반복을 통해 몸에 배게 하는 도구로 다룬다.
Japa 자파
신의 이름을 되풀이해 부르는 수련. 보통 108개의 구슬로 된 염주 말라(mala)를 돌리며 행한다.
Asana 아사나
편안한 자세, 앉음새. 요가 여덟 단계 가운데 세 번째로, 책은 화려한 동작보다 "오래 고요히 앉을 수 있는 자세"라는 본래 뜻을 강조한다.
Bhakti 박티
헌신의 요가. 분석이 아니라 사랑과 예배를 통해 신에게 다가가는 길로, 저자 자신이 자기 길로 꼽는 방법이다.
Tapasya 타파스야
고행, 참회, "불에 의한 정화". 책에서는 자기 처벌이 아니라 집착을 태워 내는 단련의 의미로 쓰인다.
Ahimsa 아힘사
비폭력, 해치지 않음. 요가 계율의 첫자리에 놓이는 원칙으로, 책이 그리는 "고요한 존재"의 바탕 태도다.
Atman 아트만
영혼-영(Soul-Spirit). 개별 존재 안에 깃든 브라만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끝내 가리키는 자리다.
Brahman 브라만
모든 것이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절대적 하나, 궁극적 실재. 아트만과 브라만이 다르지 않다는 통찰이 책의 형이상학적 뼈대를 이룬다.
Bindu 빈두
프라나의 낮은 형태. 책의 에너지론에서 성적·생리적 차원의 생명력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Ojas 오자스
프라나의 가장 높은 형태. 수련을 통해 거친 에너지가 정화되어 도달하는 미세한 영적 활력을 뜻한다.
Siddhi 싯디
숨겨진(occult) 힘, 초능력. 책은 싯디를 성취의 증표가 아니라 길을 늦추는 "또 하나의 막다른 골목"으로 거듭 경계한다.
OM (AUM)
모든 에너지의 총합, 첫 원인, 모든 곳에 스며 있는 소리. 만트라 수련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음절이다.
Namaste 나마스테
"당신 안의 신성에게 절합니다"라는 뜻의 인사. 모든 존재를 신의 현현으로 대하라는 책의 태도가 한 단어에 압축되어 있다.
AFTERWORD

그 후의 이야기

책과 사람이 남긴 것
01

AFTER THE BOOK

책 이후의 삶

1971년 이후 람 다스(Ram Dass)의 삶은 책이 설파한 "봉사(seva)"를 제도로 옮기는 과정이었다. 그는 1970년대 중반 하누만 재단(Hanuman Foundation)을 세워 수감자들에게 명상과 요가를 전하는 교도소 아쉬람 프로젝트(Prison-Ashram Project)를 지원했고, 죽어 가는 이들을 의식적으로 동반하는 임종 프로젝트(Dying Project)를 이끌었다. 1978년에는 개발도상국의 실명 예방과 보건 사업을 펴는 세바 재단(Seva Foundation)을 공동 설립했다.

1997년 2월의 뇌졸중은 그의 언어와 몸 절반을 앗아 갔지만, 그는 이 사건을 "혹독한 은총(fierce grace)"이라 부르며 노화와 죽음을 다룬 «Still Here»(2000)를 펴냈다. 만년에는 하와이 마우이에 정착해 가르침을 이어 갔고, 2019년 12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는 러브 서브 리멤버 재단(Love Serve Remember Foundation)이 강연 아카이브와 출판을 통해 그의 유산을 관리하고 있다.

We all die in each moment . . . and we are all born in each moment.

우리는 매 순간 죽고 . . . 또한 매 순간 태어난다.

해설: 3부 말미의 죽음 명상에 나오는 구절이다. 훗날 임종 프로젝트와 «Still Here»로 이어질 주제, 곧 죽음을 삶의 반대가 아니라 매 순간의 사건으로 보는 관점이 이미 이 책 안에 놓여 있었다.
02

CULTURAL IMPACT

문화적 파장

«Be Here Now»는 출간 이후 한 번도 절판되지 않은 채 200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양 영성을 다룬 영어권 서적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책의 하나로 꼽힌다. 젊은 시절의 스티브 잡스는 이 책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고, 조지 해리슨은 1973년 앨범 «Living in the Material World»에 책 제목을 그대로 딴 곡 "Be Here Now"를 실었다.

더 넓게 보면 이 책은 요가·명상·마음챙김이 소수 구도자의 전유물에서 대중문화의 일부로 옮겨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지금 여기"라는 구호가 오늘날 광고 문안이 될 만큼 흔해진 데에는, 이 네모난 보라색 책이 만든 어휘의 힘이 적지 않다.

Don’t think about the future. Just be here now.

미래를 생각하지 마라. 그저 지금 여기에 있어라.

해설: 1부에서 바그완 다스(Bhagwan Das)가 여행 중의 저자에게 던진 말로, 책 제목의 직접적 기원이다. 한 사람의 여행담에서 나온 이 문장이 반세기 뒤 하나의 문화적 관용구가 되었다.
03

A BALANCED VIEW

균형 잡힌 시선

이 책을 둘러싼 논쟁도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사이키델릭 체험에서 출발한 영성이라는 태생은 처음부터 논란거리였다. 약물이 연 문을 수행이 이어받는다는 서사는 어떤 이들에게 해방의 증언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위험한 지름길의 낭만화로 읽혔다. 또한 후대의 연구자들은 힌두교와 불교의 개념을 서구 독자의 입맛에 맞게 번역·절충하는 과정에서 전통의 맥락이 탈색되었다는 점, 이른바 문화적 전유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왔다.

그럼에도 이 책이 유지하는 위치가 있다. 저자는 자신을 완성자가 아니라 "길 위의 초심자"로 소개하며, 배운 것을 나누는 일 자체를 수행의 일부로 규정한다. 확신에 찬 교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정직한 실험 보고라는 점, 그것이 비판을 통과하고도 이 책이 살아남은 이유에 가깝다.

The sharing is part of the work. The listening is part of the work. We are all on the path.

나누는 것도 수행의 일부이고, 듣는 것도 수행의 일부다.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있다.

해설: 3부 서문의 문장이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위계를 지우고 모두를 같은 길 위에 세우는 이 겸손한 어조가, 이 책을 교리서가 아니라 동행의 기록으로 만든다.
04

READING IT TODAY

오늘 이 책을 읽는 법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책을 1960년대 반문화의 유물로만 읽는 것은 가장 재미없는 독법이다. 사이키델릭의 유행도, 인도행 히피 순례도 지나갔지만, 책이 붙들고 있는 질문은 지나가지 않았다. 그 질문은 "주의(attention)를 어디에 둘 것인가"이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계산에 저당 잡힌 주의를 지금 이 순간으로 되돌리는 일, 스마트폰의 시대에 이 문제는 1971년보다 오히려 절실해졌다.

그렇게 읽으면 이 책의 세 부분은 하나의 실험 설계로 다시 보인다. 1부는 한 심리학자가 자기 주의의 습관을 해체한 기록이고, 2부는 주의가 달라졌을 때 세계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시각적 보고이며, 3부는 그 상태를 약물 없이 재현하기 위한 절차서다. 믿음을 요구하는 책이 아니라, 각자 검증해 보라고 내미는 책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실험에 한 가지 태도를 당부한다. 너무 심각해지지 말 것.

Cosmic humor, especially about your own predicament, is an important part of your journey.

우주적 유머, 특히 자기 자신의 곤경에 대한 유머는 여정의 중요한 일부다.

해설: 3부의 조언 중 하나다. 자기 곤경을 웃어넘길 수 있는 거리감이야말로 이 책이 권하는 마지막 기술이며, 오늘의 독자가 가져가기에 가장 실용적인 유산이기도 하다.
핵심 이 책의 제안은 결국 하나다. 삶의 무게 중심을 기억과 기대에서 현재로 옮겨 보라는 것. 그 실험은 1971년의 언어로 쓰였지만, 실험 자체는 시대를 타지 않는다.